막내조카에게 릴케의 피를 수혈하다

by 이은주

아들, 공부하느라 힘들지? 이제 얼마 안 남은 시험을 앞두고 네가 온힘을 다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고모가 안다.

그러나 그저께 밤에 있었던 일이 고모의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지 않는구나. 너는 고모가 정명이랑 놀아주라고 명령을 했다고 한다. 신경질을 먼저 부려서 불만이라고 했다. 고모는 몇 주만에 만난 정명이에게 시끄럽다는 말보다는 다른 따뜻한 질문을 해주는 어른 남자가 필요했다. 언어치료를 받고 있고 양손, 양발 협응 능력이 부족하여 감각통합치료를 받고있는 정명이에게 어린이집 생활이 불편하지는 않았는지 마음을 헤아려주는 어른이 필요했다.

혼밥세대인 너의 즐거운 식사시간을 방해했던 고모는 말한다. 너는 그날 들려도 듣지 못하고 보여도 보지 못하는 것이 있었다. 할머니는 어린 손주를 오랜만에 보시고 반갑기는 했지만, 함께 놀아주면서 들리지 않는 귀로 신경을 써가며 놀아주려 애쓰셨지만, 점점 힘에 부쳐하시는 것을 고모는 양파를 쓸면서 느끼고 있었다.

양파를 쓸면서 마음 속으로는 빨리 잡채를 만들고 아이와 놀아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지. 일하는 동안 가끔 너를 돌아봐도 너는 오래간만에 만난 고모에 대해서는 전혀 궁금해하는 모습없이 그저 밥을 먹으며 핸드폰 읽기에 몰두하고만 있더라. 고모는 가족을 위해 전날부터 장을 보고, 잡채에 쓸 고기를 재고 당근을 볶고, 버섯을 채썰고 맛살을 잘게 찢으며 새벽까지 달렸거든...

이런 수고를 가족은 볼 수 있어야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시간을 나누고, 준비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고모는 물었다. 오늘 저녁을 먹으러 오는 길에 너는 어린 조카를 위해 어떻게 놀아줄까 잠시라도 생각을 했는가고. 고모의 지난 시간들을 너와 나누고도 싶었다. 나는 너희 집 문을 열고 들어오기 전 늘 누나와 너와 어떻게 보낼 것인지 계획하고 시간을 내고 실천했기 때문이다.

그날 너의 반응은 까칠했다. 이런 식이라면 이제 고모는 설 자리가 없는 게 아닌가 싶었다. 나는... 엄밀히 따지면 가족이 아니니까. 너의 엄마가 아니니까. 나는 헌신은 하되 엄마로서 가져야 할 권리와 노력의 대가는 모두 반납하여야 하는 그런 가족구성원인가 싶었다. 필요하면 찾고, 필요하지 않으면 한쪽으로 사라져 있어야하는 존재인가. 너의 혼자 밥먹는 모습을 보면서 느낀 감정이었다.

앞으로는 이렇게 해주어라. 그동안은 입시의 노예처럼 사는 너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며 집에서는 편히 쉬고 노는 게 맞다고 생각했으나 나는 이제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왜냐하면 앞으로 명절마다 이런 지루한 말싸움을 하고 싶지 않으니까. 너는 네 안에서의 가치 기준에 맞지 않으면 화를 내고 정당성을 따지는 아이로 자랐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보면 고모 또한 너에게 지지 않을 만큼의 논리와 정당성이 있는 법. 이 싸움은 계속되리라.

한가지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다. 가족은 타인에게 대는 잣대로 대하면 실패하고 만다. 만약 고모가 너의 아빠와 누나를 고모의 잣대로 평가하고 대했더라면 우린 매일 싸우거나 아예 만나지 않는 가족이 되었을 것이다. 그날의 너를 보니 자신의 기준에 맞지 않다고 생각하면 달려들어 끝까지 싸우겠다는 태도였는데... 그렇다면 너의 부족한 누이와의 다툼이 끊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가 나이 들고 약해지면 아빠 조차도 가르치고 따질 것이라는 그림이 보였다.

고모는 그날 울었다. 고모의 눈물의 의미는 아직 만나지 않은 미래의 네 아내를, 미래의 네 아이를 위한 눈물이었다. 네가 어른이 되어 하루종일 돈버느라고 일하며 힘든 하루를 보내고 돌아와서 만날 가족을 위한 눈물이었다. 너의 논리라면 당신, 왜 화를 내? 화를 내기 전에 말을 하지? 라며 따질 게 아니니? 언어적, 비언어적인 말을 논하며 감정을 구분지으려고 할 게 아니니, 너는 그러기에 앞서서 아내의 고단한 하루를 살피는 어른이 되거라, 하루종일 알고 싶은 것이 너무 많지만 어른들이 너무 바빠서 묻지 못하고 있던 것을 자연스럽게 아빠에게 묻을 수 있는 가정이 되게 하거라.

할머니께서 고모와 아빠에게 기대하는 바가 다르고 요구하는 바가 다르듯이 고모 또한 너를 기대한다. 너의 미래를 응원한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만을 위한 시간, 자신만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시간이 되어버리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날 네 등뒤에서 할머니는 목소리가 조금씩 약해지셨다. 정명이가 조금 더 놀아달라고 했다가는 아마 곧 화를 내셨을거다. 고모는 잡채를 만드는 와중에 방안의 공기를 살펴야했다. 끝내 잠든 할머니 곁에서 놀이가 필요한 정명이가 할머니를 흔들어 깨우지 않기를 바랐다. 네 도움이 필요했다. 고모에게는 설명할 시간조차 부족했다. 이럴 거면 안 오는 게 나을 뻔했나 싶었다..

잡채를 빨리 끝내놓고 잠시 정명이와 버스를 타고 동네를 돌다오면 그사이 할머니가 쉬실 수 있겠지.. 손을 재빨리 놀려도 음식 만드는 일이 쉽게 끝나지 않았다. 그때 고모는 너의 도움이 필요했다. 너는 언어와 비언어를 말했다. 고모의 화난 목소리에서 감정을 읽고 대들었다. 토론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 너는 토론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고모에게는 일도 힘들고 감정도 힘든 결과가 되었지만 말이다.

앞으로 고모가 갔을 때는 너의 시간을 나누어 주거라.

너의 노동을 나누어 주거라. 고모가 너의 집을 방문한다는 것은 수많은 해야할 일거리를 잠시 내려두고 너와 할머니를 뵈러 가는 것이기에 너도 잠시 할일을 내려두고, 하고 싶은 일을 멈추고 서로가 마주봐야 한다는 게 가족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아울러 미래의 너의 준비된 가족도 그런 남편, 그런 아빠를 기대할 것이다. 인생은 한번 지나가면 돌아오지 않는다. 어느 날 문득 너의 아내와 너의 자식과 웃으며 밥을 먹으면서 화장실에서 울고 있던 고모를 기억하거라. 고모의 눈물이 헛되지 않도록 하거라. 뭔가 도울 것이 없는가, 내 집에 있는 가족이 무언가 불편하지는 않는가. 살피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화내는 실체만 보고 화내기까지의 과정을 보지 않는다면 그것은 결과만을 중요시 하는 사회와 다르지 않다. 누군가는 부엌에 서서 울면서 일하고 있는데 누군가는 누워있고, 또 누군가는 놀고 있고, 또 누군가는 밥을 먹고 있다. 그것이 가족이다. 그것이 사회다라고 말한다면 할말은 없지만, 그래도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사랑의 마음이 있다면 가족의 모습이, 사회의 모습이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고 고모는 생각한다.

우리는 달라져야 한다.

달라질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누나도, 아빠도, 너도, 정명이도, 고모 또한 조금씩 나아질 거라고 나는 믿고 있다. 그러니까 핸드폰을 보면서 밥먹는 즐거움을 다음에 고모가 갔을 때는 잠시 내려놓기를 바란다. 들려도 들리지 않고, 보여도 보이지 않는 삶이 아니라 카프카가 말했던 것처럼 '우리의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 하나 가슴에 품어야 하지 않겠니? 릴케의 시에서처럼 '지금 세계의 어느 곳에서 누가 울고 있다. 이유도 없이 울고 있는 사람은 나를 위해 울고 있다.'라는 인식없이 어떻게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겠니?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조카딸과 함께 엄마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