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와 다른 존재에게 연민 이상의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밤샘으로 약해진 시력, 눈을 가늘게 뜨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텅빈 버스 앞자리에 팔을 기대고 손으로 뛰는 관자놀이를 짚으면서.. 흐린 하늘과 온통 비늘로 뒤덮힌 듯한 빌딩이 흔들린다. 이런 풍경을 보고 있자면 울적해지니 녹색의 썬글라스를 써볼까. 그럼 미래로 향하는 문이 생기지 않을까. 버스에서 내가 샤갈의 주인공처럼 우산을 들고 날아오르면 허공에는 녹색의 문이 하나 있고 그 문을 열고 들어서면 난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되어 전혀 다른 세상과 만나는거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의 상상력은 거기서 끝이나 있었다. 슬픈 일이다. 키다리아저씨의 주디처럼 행복한 세상에서 살아보지 못한 사람의 상상력에는 어느 사이 자물쇠가 잠겨 있다.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를 보았다.
세상에 아름다운 오프닝이다. 그녀의 다락방에서는 곧 있으면 고단한 일상으로 안내할 자명종조차 아름다워 보인다. 탁자 곁의 조명은 또 얼마나 마음을 위로하는 구석이 있는가.은은하게 빛나는 저 빛은 심해를 유유히 떠다니는 커다란 물고기의 비늘 조각 같다. 삶에서 말을 빼앗아 버리면 어떻게 될까? 나도 저 주인공처럼 아름다운 눈빛으로, 몸짓으로 타인에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을까? 나는, 나는 그녀가 텅빈 버스 안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의 움직임을 손가락으로 천천히 따라가보는 심정을 알 것도 같다. 아무리 슬퍼도, 아무리 외로워도, 그리고 또 아무리 가난해도 그녀만의 멜로디가 일상에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안다. 영화의 오프닝과 엔딩을 가슴에 꼭 안고 나도 나만의 멜로디에 귀기울여야지. 셰이프 오브 워터라는 영화 덕분에 나는 조금 더 아름다운 멜로디를 가질 수가 있었네..
2018년 2월 25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