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시작된 지 3분 후에 들어갔다. 컴컴한 영화관에서 자리를 찾는 건 불가능. 빈자리에 앉아 서둘러 핸드폰 전원을 끈다. 얼마 전 친구 어머니께서 감자 한 박스를 보내주셨기에 여름 문안 인사겸 감사 편지를 쓰느라 꾸물 거리다가 늦은 것이다.
파리에 도착한 연인들. 길과 이네즈는 레스토랑에서 소르본 대학에 강의차 온 폴과 캐롤을 우연히 만난다. 다음 날 로뎅의 조각 앞에서 학자연하는 폴이 무엇이든지 아는 척 하자 길은 딴지를 걸고 우디 앨런 특유의 수다가 시작된다.
"로뎅의 부인 까미유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어." 폴.
"까미유는 로뎅의 정부였어요. 부인은 따로 있었죠." 가이드.
"아니에요. 내가 맞아요." 폴.
"내가 얼마 전에 로뎅 전기를 읽었는데 까미유는 로뎅의 정부였고 아내가 따로 있었죠." 길.
"로뎅 전기는 언제 읽었어?" 이네즈.
"내가 그런 걸 왜 읽어?." 길.
와인 시음회에서조차 전문가연하는 폴을 지루해 하던 길은 혼자 파리의 밤거리를 산책하기로 한다.
산책 중 길을 잃어버린 길. 12시를 알리는 종이 치자 길 앞에 차 한대가 나타난다.
"와서 한 잔해요."
"여기는 파티가 많아요. 파리의 밤을 즐깁시다."
"어디로 끌고 가는 거요?"
"파티 가는 거죠."
이윽고 피아노 연주에 맞추어 콜 포터의 'Let's do it'이 흐르는 파티 장면.
어리둥절 하게 주변을 둘러보는 길에게 피츠제럴드의 아내 젤다가 말을 건다.
"무슨 일 하세요."
자신을 소설가라고 밝히는 길.
"얼빠진 표정이군요." 젤다.
장콕도를 위해 파티를 열고 있다고 밝히는 피츠제럴드.
자동차를 타고 시간이동을 한 길이 엉뚱한 말을 하자 젤다가 정리를 한다.
"무슨 말인지 알았어요. 여기가 지루하다는 뜻이네요. 브릭탑에 가자."
바로 자리를 옮긴 길과 젤다와 피츠제럴드.
바에서 만난 헤밍웨이!
"내 책을 좋아하나 보군. 좋은 책이지. 정직한 책이니까." 헤밍웨이.
자신의 소설이 어땠는지 묻는 젤다의 말엔 대답도 하지 않고 헤밍웨이는 피츠제럴드에게 '자네 젤다 때문에 돌아버릴 거야. 작가가 글을 써야지'라고 충고한다.
"답답하다. 갑자기 분위기 마음에 안 들어." 라며 자리를 뜬 젤다와 피츠제럴드.
바에 남은 헤밍웨이와 길.
"권투하나?" 헤밍웨이.
"안 해요." 길.
"어떤 걸 쓰나?" 헤밍웨이.
"노스텔지어 샵에서 일하는 사람. 왜요. 소재가 아닌가요?" 길.
"아닌 소재는 없소. 내용만 충실하면." 헤밍웨이.
헤밍웨이에게 자신의 소설을 읽어달라고 부탁하는 길.
"내 의견은 '싫다'에요. 못 썼으면 못 써서 싫고. 잘 썼으면 질투가 나서 싫고." 헤밍웨이.
"제 글에 대한 평가를 못 내리겠어요." 길.
"작가들은 경쟁심이 심하지. 내가 최고니까 억울하면 한판 붙어."
헤밍웨이는 길의 작품을 거트루트 스타인(거트루트는 헤밍웨이의 스승이자 미술후원자로 피카소가 그의 초상을 그리기도 했던 여류작가. 그런데 레즈비언이었다./서울신문 20120623/펠릭스 곤살레스 토레스 '더블'전/조태성 글)에게 보여주자고 제안한다.
다음 날 약혼자 이네즈를 동반하고 시간이동을 하는 푸조를 기다리는 길. 길과 함께 기다리던 이네즈는 호텔로 가버리고 12시를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길은 다시 시간이동을 하는 푸조에 오른다. 푸조에 타고 있던 헤밍웨이는 스타인의 집으로 안내한다. 스타인과 피카소가 모델 아드리아나의 그림을 놓고 토론을 벌이던 중에 헤밍웨이가 길이 등장한다. 모딜리아니, 브라크와도 애인관계였다는 피카소의 모델인 아드리아나와 만난 길은 그녀의 매력에 빠지는데...
매일 밤 1920년 대로 시간이동을 하던 길은 T.S. 엘리어트, 사진가 만 레이, 영화감독 부뉴엘, 초현실주의 화가 달리를 만나는 길을 보면서 우디 앨런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영화 속에서 하고 싶은 만큼 풀어 놓을 수 있는 이야기꾼임을 새삼 인정하게 한다. 그렇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영향을 받았거나 열렬하게 좋아했던 예술가의 시대를 동경하고 그 세계에서 살길 원한다.
1920년대를 동경하던 길과 1920년대에 살면서 벨 에포크(프랑스어로 좋은 시대라는 뜻) 시대를 동경하는 아드리아나는 12시를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마차를 타고 로트렉과 고갱과 드가를 만난다. 벨 에포크 시대의 그들은 다시 르네상스 시대가 황금 시대라며 더 좋았다고 한다.
벨 에포크 시대에서 살자고 제안하는 아드리아나에게 길은 페니실린이 없고 치과의 마취제가 없이는 살 수 없다며 현재로 돌아가길 원한다.
현재로 돌아 온 길은 다시 혼자가 되고 파리의 밤거리를 홀로 걷다가 자신의 소설 속 주인공처럼 골동품 점에서 일하는 여성과 만난다. 비가 내리고 비를 맞으며 걷는 두 사람. 그녀 역시 길처럼 비에 젖는 게 아무렇지도 않다.
미드 나잇 인 파리는 우디 앨런이 자신의 분신이기도 한 길을 통해 무슨 이야기가 하고 싶었던 걸까. 보석가게 앞에서 반지를 보던 길의 약혼자 이네즈는 엄마에게 이렇게 말한다. "결혼반지는 역시 다이아몬드에요. 저 정도 크기라면 제일 뒤에 있는 사람에게도 보이겠죠."
속물근성이 다분이 느껴지는 의도적인 대사.
또 한가지 에피소드는 길이 1920년대의 여인 아드리아나에게 선물하려고 자신의 보석함에서 진주귀걸이를 챙긴 것도 모르고 분명 진주귀걸이를 훔친 사람이 호텔 청소부일 거라며 아네즈가 처음부터 청소부가 마음에 안 들었다는 식으로 말하는 장면이다.
"꼭 없는 사람 편을 들더라. 그러니까 공산주의자라는 평을 들었지."라며 길을 몰아 세우는데, 이들의 대화는 극히 단순하면서도 두 인물이 삶을 대하는 태도를 나타내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줄 선물을 자신의 약혼자 보석함에서 찾는 길과 자신이 분실한 물건을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없는 사람이 가져갔을 것이라고 믿는 이네즈. 더없이 부유해 보이는 그들의 빈약한 상상력 또한 우디 앨런의 계산된 편집이었을까.
'미드 나잇 인 파리'는 그 어떤 영화도 이렇게 아름답고 멋지게 파리를 그릴 수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비에 젖은 파리, 노천 카페, 수많은 조각과 미술품들, 헌책방, 골동품 점 등등. 영화 속에서 보여줄 수 있는 환타지를 최대한 활용한 영화. 영화 포스터에서처럼 마치 내가 아름다운 그림 속으로 걸어들어 간 느낌이 들게 한 영화. 거리에 있는 모든 것이 예술이며 아름다움이라고 감탄하는 길의 모습에서 우디 앨런의 얼굴이 오버랩되는 영화다.
자신의 이야기를 즐겁게 들려주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한가. 그런 이야기를 즐겁게 들어 주는 사람이 많이 있다는 건 또 얼마나 행복한가. 살짝 질투가 나는 건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나는 우디 앨런이 부러웠다.
재능을 마음껏 펼치는 예술가의 삶을 마음껏 동경하게 하는 영화. 일주일에 두 번이나 영화관을 찾게 한 우디 앨런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