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부부와 도토리2

돌봄, 그 어려운 경계

by 이은주

-잘 해주며 화내지 말고 못해주며 미안해하기!

주말을 보내고 간 양손마비 뮤즈의 부엌에 집에서 구워간 가자미를 꺼내놓으며 안부를 묻지.
어젯밤엔 잘 주무셨어요?
응. 밖에 비와?
예. 구찌뽕 드실래요?
응.
아침은 뭐 드셨어요? 간장에 비볐어. 영감이.
근데 뭐 깨뜨렸어요?
응. 영감이 밥 남겼다고..
거기까지 듣고 더는 묻지 않는다.

간밤에 추워졌지요? 오늘은 목욕하고 긴팔 입으세요.
냉장고에 아무것도 없네요. 간식이 없어서 어떻게 하나.. 어, 고구마 한박스 들여놓으셨네요?
어디?
신발장 옆이요.
아까 우산 가지러 왔는 줄 알았더니 고구마 두고 갔나보다.
고구마 깎아드려요?


이제 목욕하셔야지요? 근데 밥 남겼다고 왜 그릇은 깨셨데요.. 그릇 깨면 손해지.. 몸을 씻겨드리다 허리를 숙인 채 스톱모션. 발등에 푸른 멍발견..

성질이 못됐어. 뮤즈가 받는다.
잠시 후 문딩이..
라고 덧붙인다. 그게 끝이다.
내가 노인학대 교육에서 받은 그대로 신고를 해봤자. 이들 노부부를 떨어뜨려 놓을 수야 없지 않은가. 섣부른 신고로 그나마 뮤즈의 돌봄 방문이 거절될 수 있겠다 싶어 관찰만 한다.

뮤즈여, 그대는 욕도 못해. 욕도 몰라.
할아버지, 제우스를 떠나서 산다는 건 학대보다 가혹한 결말인 줄 제가 압니다.
그저 당신의 감정이 상처투성이, 멍투성이가 되어 마침내 자기방어처럼 말수를 줄이고 표정이 사라졌던 지난 겨울로 돌아가지 않도록 위로가 되기를 바라며 숟가락에 퍼올린 밥 위로 가자미 하얀 생선살을 듬뿍 올너놓습니다.

마침내 3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게 순식간에 지나갔다. 나는 마음 속으로 제우스께 텔레파시를 보낸다.
잘 해주고 화내지 말고 못 해주고 선물 같은 것 해주지 말고, 그냥 못 해주고 미안해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이런 말도 해드리고 싶다. 전부 당신 잘못은 아니라고. 일흔일곱이면 이제 쉬실 만도 한데 아픈 무릎 통증을 참고 공공근로에 나가는 게 참 싫으셨을 거라고. 밥 남겼다고 접시는 깼지만 하루종일 마음이 무겁지는 마시라고.. 그렇게 자신을 미워한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 술생각이 나서 또 술을 드시고 아픈 몸으로 잠들면 남은 내일은 대체 어쩌실 거냐고..

뮤즈의 상태변화기록지에 피부상태 악화로 2번을 표시하고 비고란에 좌측 발등 푸른 멍 발견. 아내가 밥을 남겼다고 접시를 깨심. 알콜로 인한 우울증이 의심되어 관찰 요망! 이라고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