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옹에서 온 편지 2

by 이은주

3일째 샤워를 못 했다고 하니까 이런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남산 공원 조경을 담당하는 공무원과 2차로 '섬'이라는 카페에 갔었지.
그의 어떤 질문에 내가 그런 대답을 했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아. 단지 내가 답한 것에 그가 한 대답이 예상과는 달라서 두고두고 웃었던 기억.
내가 말했지.
저는 씻는 걸 싫어해요.
그가 대답했어.
환경운동가이시군요.

아줌마는 아마 '섬'에서 이런 자랑을 했었던 것 같아.
가난하다고. 근데 그것이 자발적인 가난에 가까웠다고..
전기요금이 5천 원이 넘지 않았을 때의 일이야. 전기밥솥도 티브이도 청소기도 세탁기도 없이 늘 손빨래를 하면서 오전엔 사람 서넛을 가볍게 죽이는 추리소설을 번역하고 오후에는 요리책을 번역하고 저녁이면 과연 내가 번역한 요리 레시피대로 하면 먹을만한 것이 완성되는지 궁금해서 번역료를 거의 다 요리하는데 써버렸던 시절.
감자를 으깨서 튀긴 감자크로켓은 치매로 고생하시던 할머니께서 맛있게 드셔주셨지.
요리책 이름이 '대충형 인간의 요리술'이었는데 출판사가 차일피일 미루는 통에 저자는 그만 화가 나서 더 이상 한국 출판사와는 거래를 안 하겠다고 했단다. 아쉽게도 그 요리책은 아줌마의 개인 요리책이 되어버렸단다.

지금 새벽 3시 40분
긴 하루를 마감하고(11월 1일 출간 일정이 잡혀서) 저자 교정을 보았어. 피로가 몰려오는군.

조심해야지. 늘 안전에 조심하거라. 안전모가 없으면 절대 타지 말고!
photo by 홍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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