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6월이었다. 네이버의 한 카페에서 ‘내 이름은 파출박사’란 글을 읽고 나는 멍하게 잠들어 있던 뇌의 한가운데를 퍽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그때 느낀 ‘퍽 얻어맞은 느낌’은 세월이 지난 지금도 종종 내게 긴장과 자극을 주는 어떤 에너지로 남았다. 당시 ‘발탈’이란 닉네임으로 카페에 올라온 ‘파출박사’ 1편은 “자유롭고 용기 있는 나는 파출박사”라고 스스럼없이 자신을 표현했다. 그 후 4회까지 연재된 글에는 자신뿐 아니라 일상을 함께하는 사람들의 생활, 언어 등이 묘사돼 있어 식당 노동자로 일하는 분들의 면면과 일상을 함께 감상할 수 있었다. 다큐멘터리 또는 영화 장면을 보는 것처럼 언어로 생생한 기록을 전하는 그의 문학적 감수성도 놀라웠다. 그는 일본문학 번역가다. 번역만으로 생활이 되지 않으니 학습지 방문교사를 선택했고, 고정된 일상에 얽매이는 시간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어 학습지 교사를 그만두고 파출박사를 찾아간 것 같았다. 그리고 출판편집 분야 프리랜서로 일하는 사람들의 온라인 카페에 ‘내 이름은 파출박사’를 올리며 나와 같은 독자들과 만나고 소통했다. 프리랜서는 고정된 거래처와 꾸준한 일감이 있다 해도 거래처 사정으로 일이 끊어질 수 있기에 생활이 늘 불안정하다. 몇 주일, 여러 달 일이 끊기면 새 일을 찾아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면서도 거래처 연락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러니 파출박사 일을 하러 간다는 일본문학 번역가의 솔직한 이야기는 남의 얘기가 아니었다. ‘발탈’이란 닉네임의 그는 자신의 꿈을 위해 열심히 살고 있으며, 한 가지씩 새롭게 용기를 내 도전한다는 사실도 밝혔다. 사람은 누구나 욕망과 현실 사이에서 만족하지 못하기에 ‘고픔’을 느끼며 살아가고, 꿈의 좌절과 포기를 경험하기도 한다. 살기 위해 때로는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욕망을 억압할 때도 있다. 불안정한 삶의 기반을 지닌, 가난한 삶은 특히 그러하다. 남들처럼 살기 위해선 가난을 견디며 꿈이나 욕망은 조금씩 포기하고, 사회적 도움을 받되 그 경계 안에서만 가능한 것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긋기도 한다. 당시 ‘파출박사’를 읽고 머릿속에 전등이 켜지듯 자극을 받은 이유는 아마도 내가 그런 한계 속에 스스로 갇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글이 신선한 충격으로 느껴지고 나를 부끄럽게 한 이유는 바로 그 지점이었다.
그해 늦가을 정오쯤, 정독도서관 입구에서 그와 만났다. 이 새로운 친구와의 설레는 만남을 즐기려고 나는 일부러 천천히 걸었다. 날이 조금 흐리고 바람이 차가웠다. 그는 늦가을과 초겨울에 딱 어울리는 도톰한 니트류 겉옷을 입고 머리에 따뜻한 감색 모자(정확하진 않지만, 모자가 따뜻해 보여서 감색으로 기억한다)를 쓰고 벤치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멀찍이서 나는 그 사람이 발탈, 이은주임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빨간 머리 앤〉의 주인공이 생각났다. 우리는 삼청동 쪽으로 연결되는 길을 걷다가 북촌만둣국 식당으로 갔고, 손님이 가득 찬 식당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의자에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처음 만났지만 오래 알던 친구 같았다. 서로의 나이를 알 필요가 없었고, 그렇게 우린 친구가 됐다.
9년이 지난 지금, 그는 파출박사를 거친 뒤 인천공항 면세점 직원으로 몇 년간 일하다가 요양보호사로 직업이 바뀌었다. 그 사이 내 어머니가 쓰러져 입원하셨을 때, 그는 요양원 근무를 마치고 병원으로 달려왔다. 노인성 질환이 닥쳐오는 엄마를 나는 어떻게 돌봐야 할지 몰랐고, 갑작스레 치매가 심하게 온 듯이 보이는 엄마의 섬망증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척추협착증으로 걸음이 불편한 데다, 섬망이 오고 요실금이 심해 기저귀를 찬 엄마는 정신이 오락가락한 상태로 화장실에 자주 가고 싶어 했다. 낙상 위험이 있으니 기저귀를 이용하면 되는데, 굳이 화장실을 이용하겠다며 고집을 부리셨다. 나는 짜증이 났고, 엄마는 고집을 부리고, 모녀가 씩씩대며 다투고는 어쩔 수 없는 화해를 하며 지냈다. 나는 미안해서 잘해드리고 싶다가도 화가 나고, 잘해주고 싶어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쩔쩔매곤 했다. 이런 나에게 그는 응원병처럼 나타나 즐거운 분위기로 엄마 기저귀를 갈아주고, 링거와 주사액 주머니를 주렁주렁 달고서 경쾌하게 엄마를 화장실에 데려갔다. 엄마가 원하는 것을 해주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달래고 설득하며 요양보호사로서 전문성을 발휘했다.
그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어르신을 돌볼 때도 진심을 다해 마음을 준다. 그러한 그의 글은 그 과정을 표현하는 것 자체로 문학이 된다. 일상의 희로애락을 솔직하고 문학적 감수성이 뛰어난 표현으로 묘사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의 보석 같은 글들이 책으로 출판되거나 상상력을 발휘해 문학작품으로 승화하길 바랐다. 그의 글이 누군가에게는 삶의 용기와 위로가 되고,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에 감동을 주는 글, 문학은 그런 힘이 있다. 그는 엄마, 남동생, 두 명의 조카, 손주와 함께하는 삶에서 매우 바쁜 중에도 언제나 틈틈이 책을 읽고, 기록했고, 문학을 포기한 적이 없다. 그가 돌보는 어르신은 고급 서비스(예술성이 풍부한 그의 손끝에서 우러나는 고급 서비스는 겪어본 사람만이 안다)를 제공하는 그와 헤어지고 싶지 않을 것이고, ‘일상이 이렇게 따뜻하고 행복할 수 있구나’ 하고 내일 또다시 만나게 될 그를 기다릴 것이다. 누군가의 눈에는 비루해 보일 수도 있는 삶이 자세히 들여다보면 따뜻할 수 있다는 것을, 그의 이야기에서 느낄 수 있다. 지금 나의 어머니는 요양원에 계신다. 나는 어머니를 오랫동안 돌봐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11월의 요양보호사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인 그가 나를 그렇게 이끌었을지도 모른다. 엄마가 생활하는 곳의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며칠 전에 툭 던진 말이 생각난다. “일이 힘들고 피곤해도, 어르신들이 가끔 웃겨주셔서 힘든 것을 잊는다”고. 그 선생님에게도 어르신들이 ‘뮤즈’이고 ‘제우스’일지 모른다. 미처 이런 표현을 찾아내지 못한 채 일하고 계시겠지만, 그분도 정성과 애정으로 어르신들을 돌보고 계신다. 이 책은 이렇게 정성을 다해 일하고 계신 분들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이런 이야기를 기록하고 책으로 펴낸 발탈 이은주가 자랑스럽고, 책이 출판돼 진심으로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