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인식 2

by 이은주


일요일엔 출판사 대표와 친구 몇이 모여 출판기념회 비슷한 것을 했는데 그 자리에 엄마와 손자를 데리고 갔어요.
제 예상대로라면 엄마는 당신의 딸이 어떤 식으로 사람들과 교우하는지 무척 궁금하시리라 생각했고 친구들이 제 책을 꺼내서 싸인을 받으려한다는 사실이 엄마를 충분히 기쁘게 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사실 친구들에게 조금 미안하기도 했어요. 진지한 대화도 하기 어렵고 배려해야 할 대상이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이나 등장한다는 것이 실례라고도 느꼈지요.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그래서 자격지심에 저의 개인적인 체험을 소개하기로 했습니다.

일본에서 유명한 연출가가 한국배우를 초대하여 공연을 올리는데 신혼 초인 배우는 일본 공연을 앞둔 김에 자신을 초대하면서 마련해준 비즈니스 호텔에 아내와 아기를 함께 머물게 하다 그만 아기 우는 소리로 그 호텔에서 쫓겨날 위기에 있었다. 그때 그 연출자 선생님은 노발대발하시며 프로의식을 탓하고 일하러 오면서 어떻게 아내와 아기를 데려왔는가 물으시며 배우를 극한까지 몰고 가셨는데 그 말을 모두 통역해야했었다고..
나라면, 나라면 비즈니스호텔에서 쫓겨나게 될 가족에게 자신의 방 한칸 내주었을 텐데 가난한 배우가 연극을 하면서 언제 또 일본에 오게 될지도 막연하고..
또 한 가지 에피소드는 건축가 승효상 선생님의 인터뷰를 하면서 '지금 저희 집에는 승효상선생님을 만나뵙고 싶어하는 친구가 기다리고 있으니 그 친구를 위해서 '오래된 것은 다 아름답다'와 다른 한 권의 책에 싸인을 해주시겠어요?'라고 여쭙자 즉각 돌아 온 대답이 '같이 오지 그랬어요?'
그런 답을 주실 줄 예측하지 못한 나는 일본 연출가와 너무나 대비되는 반응에 그후로 승효상 선생님을 존경하게 되었다는 에피소드로 출판을 기념하는 자리에 청각장애가 있는 엄마를 모시고 와서 큰 목소리로 사람들의 대화를 이중 전달하는 딸로서 송구함을 대신했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저는 평소에 생각했던대로 행동에 옮긴 거였어요. 이별 후에 애닲아 하지 말고 이별 전에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보겠다고.
어쩌면 지팡이를 짚고 집으로 돌아가셔서 낮잠을 주무시듯이 엄마와의 만남이 마지막이 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이 제게 있습니다. 엄마와 나는 주일예배가 마지막이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출판기념회가 마지막일 수도 있는데 이왕이면 숨이 턱에 차도록 나와 남동생을 돌봐 온 엄마에게 소주 한 잔 친구가 권해 준 그런 이별. 매순간 떠나보내는 조각 이별.
그런 식의 마지막과 마지막이 여럿 모이면 결국 죽음의 인식이 더는 비극이 되지 않으면서 R.까뮈가 말했던 '행복한 죽음'처럼 가벼워지는 게 아닐까 하는 바람입니다.
어쩌다 우리는 부모 자식간의 인연으로 만나 최선으로 살다가 이별을 하는 거라고. 만나서 반가웠다고 그리고 고마웠다고.
모든 만남은 그렇게 순한 끝이어야 하지 않을까고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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