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옹에서 온 편지 3

by 이은주

몽당연필 아주머니께.
아주머니. 몇 가지 소식과 저의 다짐을 알려드리려고 이렇게 연락드려요.
그전에 아주머니의 책 출간 소식과 출간 후 여러 활동들, 너무 축하드리고 응원해요. 아주머니도 저를 오랫동안 보셨지만, 저 또한 아주머니를 십오 년째 알고 지낸 사람으로서 너무 잘 된 일이라고 생각돼요! 아주머니의 지독한 책 사랑과, 치유의 글쓰기라고 부르셨던 기록들이 결국은 이렇게 세상 사람들에게 소개되고, 읽히는 날이 와서 너무 기쁜 마음뿐이에요. 늘 잠들기 전 페이스북으로 아주머니의 소식을 읽어보며 응원과 동경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점 꼭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아주머니의 행보와 제가 여기서 지내며 든 마음들을 비롯해 저도 힘을 받아 한국에 돌아가게 되면 프랑스에 오기 전 아주머니와 함께 얘기했었던 아주머니와 저의 편지들을 정말 출간할 수 있는지 가능성을 알아보고 싶더라고요!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한편으로는 자극도 되고요! 제가 여기서 자주는 아니지만 틈 날 때마다 쓰는 글도 세상에 보여주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어요. 여기에서 지내다 보니 한국에서는 "에이, 그건 안될 거야." 하는 생각들이 "그래, 한 번 해보지 뭐! 재밌을 것 같아!" 로 바뀐 부분들이 있어서 스스로도 놀랄 때가 많아요.
전 지난 주 금요일날 프랑스 남부 도시 마르세유에 갔다왔어요. 물론 남자친구와 함께 갔지만 프랑스에 와서 처음으로 간 여행이라 2박3일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재밌는 것들 투성이었어요. 파리가 프랑스의 수도고 제2도시를 두고 리옹과 마르세유가 늘 대치하고 있거든요. 저는 리옹이 제2도시라고 손을 들어주고 싶지만 직접 체험해 본 마르세유의 크기도 만만치 않더라구요! 마르세유는 리옹보다 더 오래된 도시였어요. 실제로 역사적으로도 오래 된 도시이기도 하지만 거리의 건축물들도 실제로는 이게 무너지는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아주 낡고 오래된 모양이었어요. 그리고 이민자들이 많은 도시라서 사실 길거리에서 본 70프로 이상의 사람들이 중동인들이었어요. 리옹에만 있다가 마르세유에 가서 색다른 분위기를 경험하니 제법 환기도 되고 좋더라구요. 지중해성 기후라 바닷가 옆에 있어도 전혀 습하지 않고, 이미 추워진 날씨이긴 하지만 곳곳에 보이는 열대나무들이 신기했어요. 높은 성당에도 올라가서 마르세유를 한 눈에 구경해보기도 했고요. 마르세유는 은퇴한 프랑스인들이 많이 사는 도시라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분위기가 좀 더 클래식하고, 여유롭더라구요. 리옹은 그에 비하면 아주 현대적인 도시였어요. 제 기준에서 서울과 비교하면 리옹은 오래된 도시인데말이에요.
프랑스에 온 지 어느덧 2개월이 지나고, 2주째에 접어들었는데 저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여기에서 대학입학을 포기했어요. 도착해서부터 정확히 10월31일까지 고민해봤는데 도저히 마음이 서질 않더라구요. 대학을 포기하게 된 이유는 딱 이것이다, 라고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그 뭔가의 이유를 정말 곰곰히 생각해봤어요. 그 내용을 제가 혼자 쓰는 글에 적어봤는데 같이 보내드릴게요.




*글에 적은 내용.
[내가 여기 와서 이상한 감정이 든 것은 아마 여기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는 나의 은근한 깨달음 때문이었다.
프랑스에 오기 전, 프랑스를 비롯한 서구문화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앞서고, 독창적이라는 생각은 나의 사고 한구석에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난 친구들에게 우스갯소리로 나는 사대주의자라고 떠벌리곤 했었다. 모든 게 똑같은 우리나라의 문화적인 요소보다 외국의 것들이 훨씬 더 재미있게 나에게 다가왔었다. 그래서 프랑스도 서구의 한 편이니, 프랑스에 가서 내가 한국에서 쉽게 배우지 못하는 영화라는 학문을 배우고, 어떻게 해서든 문화적인 측면에서 더욱더 내가 성장할 수 있는 요소들을 일상 속에서도 배울 수 있겠거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 와보니 일상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들은 내 인생에 대한 몇몇 깨달음이었지, 문화적인 특별한 것들을 두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크게 느낀 것이 없다. 오히려 여기서 만난 스물한 살 프랑스 대학생 친구들을 만나며 느낀 것은 이제 더 이상 동양의 것들 특히 한국적인 것들이 흔히 말하는 표현으로 "구리지" 않고, 아주 "fancy" 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고등학교 때부터 원피스를 비롯한 일본 만화를 손에서 놓지 않고 보고, 닌텐도를 비롯한 비디오 게임 매장은 상권이 발달한 골목마다 하나씩 자리 잡고 있으며, 케이팝을 듣지 않는 고등학생, 대학생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넷플릭스로 한국 드라마를 보며 알로에 주스를 먹으로 아시아마트까지 찾아가는 고등학생까지 만났다. 게다가 내가 온 지금의 시기는 황금종려상에 빛나는 봉준호 감독의 열풍으로 한국 영화에 대한 위상도 꽤나 높아져 리옹 영화제를 비롯해 독일, 미국에서도 중점적으로 다루는 테마이기도 하다.
단순히 우리나라가 정보와 통신, 그리고 기술의 발달로 인해 근사해 보이고, 멋져 보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이곳 젊은이들을 끌어당기는 그 무언가를 문화적인 요소로 가지고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궁금증이다.
그게 도대체 무엇인지 여기서 지내면서 알아보려고 한다.
문화 선진국인 프랑스에서 무언가 높은 기술의 발달을 기대한 적도 없다. 하지만 "문화 선진국" 이기에 문화적인 측면은 기대를 하지 않고 왔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이 기대가 아직까지 채워지지 않아 여기에 지내면서 실망한 부분이기도 하지만 그에 비해 우리나라의 문화적 위상을 다시 한번 깨닫는 기회도 되었다. 한국으로 돌아간다면 내가 할 수 있는 프랑스어를 활용해 이곳을 시장으로 타깃 삼는 직업을 가질 수 있다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저번 주 금요일엔, 리옹에서 22살의 리옹2대학 사회과학부 남학생이 기숙사 구내식당에서 분신자살을 시도했어요. 생활고에 시달린 모양이에요. 한 달에 54만원의 돈으로 대학생의 생계는 충분한가? 라는 물음을 던지며 현대 정부를 고발한다며 페이스북에 미리 자신은 아주 끔찍한 일을 저지를 것이라는 공지까지 해놓고 분신자살을 시도한 모양이에요. 그래서 결국 전신 90프로 이상의 화상을 입고 병원으로 이송되어서 지금은 아마 의식불명인 것 같아요. 사회운동성향이 강한 리옹2대학 학생들은 이 사건을 계기로 며칠간 계속해서 시위를 진행했어요. 이 사건을 보면서 결국 사회의 빈부격차는 어느 곳에서든 일어나고 그것이 결국은 가난한 자에게는 다음 날을 살아야할지 말아야할지를 고민해야하는 문제가 너무 마음이 아팠고, 기사를 읽으며 저절로 숙연해지더라고요. 여기는 자국민들에게는 학비도 저렴하고, 사회보장제도도 잘 되어있어서 이런 일은 없을 줄 알았다는 남자친구의 놀란 반응이 참 인상깊었어요. 저 또한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오늘은 리옹에서 첫눈을 맞이했는데, 도착하자마자 마냥 시원하지 않은 날씨에 땀을 뻘뻘 흘리던 제가 생각나네요. 벌써 시간이 이만큼이나 지난게 믿기지 않고, 한 편으로는 한국에서 가질 수 없었던 오로지 저를 위해 남겨진 시간들이 좋기도 하지만, 조용한 방에 가만히 앉아있다보면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들어요. 한국에 돌아가면 이제는 어느 곳에 속해서 제가 해야할 일을 해야겠죠.
책 출간으로 인해 더 바빠지셨을텐데, 늘 건강 챙기시고, 감기 조심하세요!
마르세유에서의 사진들도 보내드릴게요.
리옹에서 H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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