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학기에 어학원 수속을 했기에 일본의 첫인상은 가을 풍경으로 가득합니다. 나리타공항에서는 가을비가 내렸고, 온통 양배추밭으로 가득한 호야라는 땅에서 저의 유학생활은 시작되었어요. 무너져버릴 것 같은 2층 가옥 앞에서 택시는 멈추었고 저와 같은 비행기를 탄 동료들은 속은 것 아니냐며 투덜댔지요. 무거운 이민가방을 끌고 계단을 올라 배정받은 방문을 열었을 때 맡았던 냄새. 나리타공항에 내려서부터 따라왔던 것 같은 그 냄새는 축축한 다다미방에서 올라오는 특유의 젖은 지푸라기 냄새였다고 기억합니다. 일본에서의 첫날밤 엄마가 싸준 솜이불이 얼마나 고마웠던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쉽게 잠들 수 없었어요. 밤새도록 내리는 빗방울이 덧문을 닫지 않은 창문을 어찌나 거칠게 때리는지 옅은 잠 속에서도 내내 빗소리를 들어야 했으니까요.
호야기숙사는 폐가에 가까울 정도로 낡아서 2층으로 오르는 나무계단은 삐걱댔고 다다미방은 오래되어 꺼진 부분이 있기도 했어요. 현관에 단 하나 세상으로 연결된 공중전화(걸 수도 있지만, 한국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을 수도 있는)가 아니었다면 세상 끝에 내동댕이쳐진 기분이 들었을 거예요. 저녁에 공중전화가 울리면 전화기와 가장 가까운 방에 배치된 제가 전화교환원이 되어 ‘누구누구 씨 전화 왔어요!’하고 외쳐야 했지요.
제가 호야기숙사에서 한 달 만에 이사를 한 건 귀신을 봤기 때문은 아니었어요. 방을 배정받을 때 저는 두 명의 룸메이트와 함께 한 방을 써야 했지요. 공동으로 쓰는 방은 목적이 다른 한국학생들, 돈을 벌러 오거나 언어도 좀 익히고 돈도 벌고 여행도 하고자하는욕구가 서로 달랐기에 생활 리듬도 달랐어요. 그곳에서 대학 입시를 준비하기는 불가능했어요. 그래서 일본 각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들이 대학가 주변에 방 한 칸을 빌려 살던 그런 방이 있는 오치아이에 오게 된 거였어요.
아, 귀신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겠네요. 제가 호야 기숙사에서 귀신을 보게 된 사정은 이래요. 어느 가을날 호야기숙사 1층, 2층을 통틀어 저 혼자만 남게 된 날이 있었어요. 일본에 온 지 한 달이 되어 갈 무렵이었지요. 한 달 사이에 저는 5kg이 빠졌어요. 돈을 아끼느라고 한 달에 양배추만 다섯 통을 먹었기 때문만은 아닐 거예요. 비싼 어학원 코스를 하루라도 빨리 끝내리라 다짐하고 하루 서너 시간만 자고 일본어 공부에 몰두하다가 그만 심한 감기몸살을 앓게 된 거지요. 기숙사생이 모두 이치가야의 어학원에 가고 없는 빈집에서 얼핏 잠이 들었는데 눈을 뜨자 일본 귀신, 앞머리를 일자로 자른 긴 생머리의 귀신이 저와 마주보고 누워있는 게 아니겠어요. 신기하게도 무섭지 않았어요. 귀찮아하면서 돌아누웠지요. 그날 제가 본 것은 귀신이었을까요? 아니면 그냥 헛것을 본 것이었을까요? 전 일본에서 생활하는 6년 동안 귀신을 본다는 친구를 몇 번 만난 적이 있어요. 저와 대화를 하면서도 저기 어린아이가 창문에 앉아있다거나 오시이레(벽장)에서 귀신을 봤다고 투덜대던 옆방 친구가 있었지요. 우린 살짝살짝 귀신을 보는 사람들끼리 친해지나 보다고 나중에 생각하기도 했는데 글쎄요. 믿거나 말거나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