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학원 수업은 오전 4시간 동안만 진행되어서 시간이 아주 많은 편이었지요. 기숙사에서 나와 혼자 살게 된 저는 1시에 집에 오면 간이 부엌에서 밥을 해 먹고 우선 한자사전으로 끝말잇기 단어 공부부터 시작했어요. 먼저 나라 국(國) 자를 찾아서 국어, 국사, 국적, 국토, 외국, 애국, 천국, 전국을 외운 다음 말씀 어(語)를 찾아 국어, 어휘, 어감, 영어, 언어, 어원, 어순 등의 단어를 외우는데 이 방법은 아주 효과적이어서 짧은 시간에 어휘를 확장시켜주었어요. 어떻게 이 방법을 깨우쳤는가 하면 저는 도쿄에 단 한 명의 선배, 서울에서부터 알고 지낸 선배가 있었는데 바로 그 선배가 권해준 방법이에요. 저는 비밀 단체의 회원은 아니지만, 어떤 특수한 서클에 속해 있었어요. 서울의 고등학교에 있는 걸스카웃, 보이스카웃의 영조장만 이 단체에서 활동할 수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자급자족, 공동체 마을 구상에 대한 그림을 그린 게 아닌가 싶습니다. 아쉽게도 성장과 동시에 친목회 이상의 문턱을 넘을 수는 없었지만요. 저는 그 단체의 11기인데 1기 선배님이 저를 대신해서 일본에 유학 중인 6기 선배에게 이렇게 명하셨답니다. “은주가 잘못되면 다 네 책임이야.”그 시절 우리들에게 1기는 아버지가 없는 이에게는 아버지 정도의 신뢰를 가졌고, 스승이 없는 이에게는 인생의 스승일 정도로 규범이 되었다고 할까요. 저희는 1기 선배를 중심으로 늘 야영지를 물색하고 캠프를 하고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고등학생 가운데 잘 노는 친구들은 여름캠프와 겨울캠프에 한 번씩 다녀가고는 했지요. 스스로 밥을 짓고, 설거지를 하고, 지도를 보고 산을 타고 저녁이면 각자가 기획한 공연을 연기하여 박수를 받았어요. 우리들은 학교 밖에서, 세상 밖에서 사는 법을 배웠던 거예요. 단 3박 4일의 일정 동안 그 누구도 낙오자가 없어야 하고, 안전이 제일 중요시되어야 했으며 계획된 일정을 마친 후 산이나 강에서 머물다간 흔적이 없도록 주변을 정리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일정 중에 하나였어요. 어쨌든 1기 선배의 명을 받은 6기 선배는 제가 도쿄에 도착하자마자 학교생활이며, 아르바이트를 하는 와중에도 호야기숙사에서부터 따라붙기 시작했습니다. 훈련된 조교가 아니고서는 이렇게까지 후배의 일본 터 잡기에 열심인 사람이 있을까 싶어요. 편의상 선배를 R선배라고 부르겠습니다. R선배는 2주에 한번 꼴로 나타나서 제 단어시험을 보겠다는 겁니다. 그러나 단어시험 대신 예술대학에서 조명을 전공하는 절친을 소개해줍니다. 이 만남이 미래의 진로를 결정하는 계기가 됩니다. 두칠이 형은 저를 두어 번 보더니 이렇게 말합니다. “이런 애가 우리 학교에 와야 하는데” 젊은이들은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한테 충성하는 법입니다. 저는 그 말 한마디에 두칠이 형이 좋아졌습니다. 그 형이 가져다준 예술학교 커리큘럼을 봅니다. 와우, 다 배우고 싶다. 모두 다. 두칠이 형은 예술대학에 청강생 제도가 있으니 도전해보라고 합니다. 청강생은 말 그대로 청강만 했지 학점이 나오지 않는 제도인데 어학원의 등록금 절반도 안 되는 과목 수강료만 내면 들을 수 있고 비자도 나온다는 정보를 입수한 저는 청강생을 뽑는 작문시험을 어학원 수업과 병행해서 준비합니다. 이때부터 어렴풋이 깨달은 것이 있어요. 모든 진로는 정보에서부터 시작된다라고. 그래서 단어시험은 봤냐고요? 딱 한번 보았어요. R선배는 두칠이 형과 와서 가끔 잘난 척, 소위 자신의 성공담을 개그버전으로 웃기다 갔고,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아이스크림을 사주거나 밥 한 끼를 사주고 갔어요. 객지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반가운데 밥까지 사준다면 충성을 안 할 수가 없지요. 저는 R선배에게 깊은 은혜를 입었고 그가 4학년을 마치기 전에 서울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을 간 동안 언니의 해외 이삿짐을 받아달라는 어명을 받고 신혼집에 들어가 짐을 받아주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할 수 있었어요.
저는 청강생 시험을 보기 위해 날마다 작문시험 준비를 했고, 마지막에는 어떤 주제가 나와도 쓸 수 있도록 몇 가지 예문을 만들어 외울 때까지 써봤습니다. 작문시험이 시작되고 마치는 시간 안에 쓸 수 있도록 말이지요. 또 다른 공부 방법으로는 아사히 어린이 신문을 구독했는데 1면의 주요 뉴스를 노트에 오려서 번역연습을 했어요. 번역 연습이랄 것까지는 없고 그냥 그런 번역가가 된 기분으로 해석을 한 거지만, 이 연습은 생각보다 어려웠어요. 그렇지만 그 연습도 두꺼운 노트 한 권이 끝날 때쯤 한 시간이면 완성하게 되었지요.
이렇게 해서 저는 6개월 만에 어학원을 졸업했어요. 니혼대학 예술학부 청강생 시험에 합격하고 1년 동안 전공과목들을 접하고 이게 아니다 싶을 때는 대학 입학 전에 짐을 챙겨 돌아갈 수 있겠다 싶었지요. 저는 기회만 있으면 집에 돌아갈 준비를 했던 것 같아요. 돌이켜 보면 경제적인 손실을 막고, 시간을 절약할 거라는 당초의 계획이 조금 아쉽기는 합니다. 어학원에서 조금 더 체계적으로 학습해서 고급 일본어를 구사할 걸 그랬나 싶기도 해요. 혼자서 언어를 공부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거든요. 어차피 지나간 일이니까 뭐 어쩔 수는 없지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