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강생이 된 이후를 말씀드릴까 합니다. 전공수업에는 나갔지만 초등학교 저학년 실력의 일본어로는 수업을 노트하는 것도, 듣는 것도, 과제물을 내는 것도 불가능한 나날들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던 저의 세계는 오치아이 방과 학교로 축소된 채 몹시 고독한 나날들이 이어졌어요. 야채가게에서 야채를 살 때 쓰는 일본어 이외에는 일주일 내내 말 한마디 못 하고 지낼 정도로 고립되었습니다. 전공수업을 듣는 문예과 학생들은 이미 친구들이 정해져 있기에 한국에서 온 유학생에게 말을 걸어주지는 않았어요. 수업시간에 흘림체로 쓴 노교수의 글씨를 읽지도 쓰지도 못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저는 집근처 서예학원에 다니기로 했어요. 어학원에서 돌려받은 수업료가 꽤 되었거든요. 나중에 안 일이지만, 서예학원에서 서예를 배웠다기 보다 3천 엔 정도하는 구몬 펜글씨 학습지를 했던 것에 불과합니다. 붓으로 쓰는 서도는 잠시 배우다가 길게 가지 못했죠. 집에서 너무 멀었거든요. 집 가까이 서도학원을 발견한 에피소드를 밝히면 아마 웃으실 거예요. 오치아이의 방은 낡은 목조 가옥이었고 5개의 방 주인이 하나의 화장실을 함께 쓰고 있었어요. 새벽에 요의를 느낀 전 공동화장실에 갔어요. 물론 잠옷을 입은 채. 그때는 일본 회사원 여성과 어학원에 다니는 한국 남학생과 입시를 준비하는 주인집 아들과 인도에서 온 여학생이 살 때였는데 처음으로 혼자 살게 된 저는 버튼 식으로 되어 있는 방을 습관적으로 잠그는 버릇이 생겨서 그날도 그렇게 문을 잠그고 화장실에 가버린 겁니다. 오치아이의 아침은 마당을 쓰는 빗자루 소리와 덧문 여는 소리로 시작되는데 그런 아침이 오기 전에 전 방밖에 잠옷바람으로 내쫓긴 꼴이 되어버린 거지요. 아래층 주인집 부부가 깰 때까지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어요. ‘보조키를 주세요. 화장실을 갈 때 방문을 잠갔습니다.’라고 말해야 하는데 아침이 오려면 멀었거든요. 그래서 할 수 없이 잠옷차림으로 신발을 신고 동네 한바퀴를 걷기로 했지요. 평소에는 부끄러워서 그냥 지나쳤던 주인집 아주머니의 분재들도 구경하고 작은 마당 한켠에 심어진 이름모를 꽃들도 보다가 심호흡을 하고 문밖으로 나갔습니다. 일본 집들은 대개 대문이 허리쯤 오는 미닫이 철문으로 되어있는데 심드렁한 얼굴로 창살 사이에 코를 삐집고 꼬리를 흔드는 순해보이는 골드리트리버를 지나 영화에서 본 것처럼 대문을 지나 한참 걸어야 현관이 나오는 아름다운 정원을 구경하며 골목골목을 누비고 다니다가 작은 간판을 봅니다. 서도(書道)라고. 처음에는 별 감흥없이 지나쳤다가 나중에야 아, 저기에서 한자 쓰기와 읽기를 연습하면 되겠구나 하고 다시 찾아가게 되었지만, 그날은 거기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어요. 그곳의 첫 인상은 마음 좋은 할머니 한 분이 선생님으로 계셨고 붓글씨를 연습하는 동네 아주머니들과 정겹게 이야기도 나누고 차도 마시는 곳으로 평상시 일본인지 한국인지 별 차이를 못 느꼈던 저에게 여기가 일본이구나 하고 느끼게 한 공간이었습니다. 먼저 미닫이 문 앞에서 무릎을 꿇고 조심스럽게 문을 엽니다. 그리고 ‘곤니찌와’하고 인사를 한 후 방으로 들어가서 다시 무릎을 꿇고 미닫이문을 닫습니다. 방에는 다다미방 냄새와 먹물 냄새가 나고 정원으로 나있는 창으로는 정원에 핀 백합이 보입니다. 백합이 물병이 아닌 땅에서 자라고 있는 것을 처음 본 저는 아주 귀한 체험을 한 기분이 들어서 무릎을 꿇고 선생님이 내준 과제를 펜으로 써내려가다가 흘끗흘끗 백합에게로 시선이 갑니다. 무릎을 꿇고 펜글씨를 수없이 연습하다 펜글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 그만 발이 저려서 일어날 때 뒤로 넘어졌었는데요.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납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할 때면 그 백합이 있는 정원이 몹시 그리워져요. 평소에는 아무 생각도 없다가 백합 정원 이야기만 나오면 일본에 무엇인가 중요한 것을 두고 왔다는 결핍된 감정이 생겨요. 아마 현재의 제가 너무 여유없게 살아서 일거예요. 하루하루가 괘종시계의 뻐꾸기가 하품을 하듯 느리게 지나가던 그 시절을 쓰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위로가 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