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치아이 방에 첫 전자 제품은 자동응답 전화기였습니다만, 그다음으로 절실하게 필요했던 것은 자전거였습니다. 제가 사는 오치아이는 세이부 선인 나카이 역과 와세다 거리와 야마노테 거리가 만나는 도자이 선으로 오치아이 역이 있고 도보로 20분쯤 가면 신주쿠로 바로 진입이 가능한 히가시나카노 역이 있는데 아르바이트를 하기에 좋았습니다. 어쨌든 일본 생활은 자전거 없이는 생활하기 불편한 점이 많았기에 유학생 대부분은 자전거를 한 대씩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도 자전거가 간절히 필요했습니다. 호야 기숙사에서 유일하게 동갑이었던 미숙이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녀는 자신이 알바를 하고 있던 야끼니쿠 가게를 통해 자전거를 구해주었어요. 자전거는 그냥 주겠지만, 운반하는 건 제 몫이었지요. 지금 야후 재팬 지도를 살펴보니 호야에서 오치아이까지 18km가 되는군요. 거리로 따지자면 잠실역에서 광화문쯤 되는 거리를 자전거를 타고 집까지 오는 길이 얼마나 막막했는지 모릅니다. 집 방향 버스가 보이면 기를 쓰고 버스를 따라잡고 달리고 골목에서 길을 잃으면 파출소를 찾아들어가 지도를 보고 다시 달리다가 서고 또 달리고. 계획대로라면 저녁을 먹고 출발해서 10시쯤 도착하리라던 저의 예상은 어긋나도 한참 어긋났습니다. 새벽 2시가 되어도 집은 나오기는커녕 어둠이 깔린 도시는 한없이 쓸쓸했습니다. 지금이라면 잠시 자전거에서 내려서 붉은 등이 켜진 라면집에라도 들어가서 라면 한그릇을 청해 먹고, 주인에게 집까지의 지도를 부탁도 했으련만, 그때는 그런 융통성이 없고 단지 걸스카웃을 초등학교 3학년부터 시작해서 국제 잼버리 대장으로 참가하기까지의 긴 세월 동안 지도보기에 훈련이 되어 있다고 자신하던 때라 달리고 서고, 달리고 서면서 표지판을 확인하며 더듬더듬 집을 찾아갔습니다. 그 후 자전거 바구니에 슈퍼에서 장본 것을 담거나 책가방을 던져 넣고 달릴 때면 아침은 아직 멀었어 라고 혼자 위로하며 자전거 페달을 밟던 밤길이 생각이 납니다. 다음 날은 말할 것도 없이 네 발로 걷다시피 근육통에 쩔쩔 멨습니다만, 2층 창밖에 자전거가 있다는 걸 생각하면 그렇게 마음 든든할 수가 없었어요. 뭐랄까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갈 수 있다고 할까요? 자전거를 타고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