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도쿄에서는 이탈리아 감독 페데리코 펠리니의 사후 10주년을 기념하는 영화제가 열렸습니다.
주말의 명화극장을 보신 분이라면 1954년 작품 길을 기억하실 겁니다.
다음은 1993년 11월에 쓴 저의 메모를 소개할까 합니다.
* * * *
영화 길은 얼마전에 죽은 페데리코 펠리니(93년 11월 2일) 감독이 만들고 그의 부인이기도 한 줄리에타 마시나와 안소니 퀸이 주연했다.
93년 11월 2일자 아사히 신문에서 펠리니 감독의 부음과 영화 길에 대해 언급한 기사가 생각난다.
'줄리에타 마시나의 인간성, 나의 인생에 있어서 그녀의 의미는... 그것을 생각할 때부터 젤소미나가 탄생, 길이 만들어진 것이다'라는 감독의 말.
길은 1954년 이탈리아의 흑백영화로서 주인공 젤소미나가 가족의 생계를 위해 1만 리라에 팔려 광대 잠파노와 먼 여행길에 오르면서부터 시작된다.
젤소미나는 신도 외투도 없는 처지에 예인이 된다는 생각으로 꿈에 부풀지만, 떠돌이 잠파노의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에는 적응하지 못한다.
젤소미나. 그녀를 어린 꼬마로 보이게 하는 외투는 그녀의 눈만큼이나 커다랗다. 호기심 많은 커다란 눈은 어쩐지 슬퍼보인다.
영화 전체를 흐르고 있는 하나의 멜로디.
이탈리아의 가난한 풍경을 모노톤으로 느리게 흘러가는 멜로디.
그 멜로디는 때로는 적막감을, 때로는 애잔함을, 때로는 몽환적인 기분으로 이끄는 무언가가 있다.
젤소미나에게 존재의 의미를 작은 돌로 비유해 들려주는
곡예사 리처드 베이스하트의 연기도 나에게는 많은 의미를 준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삶 속에서 시시각각 죽음을 예감하는 자로서의 존재론은 무척이나 따뜻한 인간미가 느껴진다.
잠시 머물다간 들판에도,
토마토를 심을 수 있는 마음의 소유자 젤소미나는
실수로 인해 잠파노의 손에 의해 곡예사가 죽자 정신적인 공황 상태에 빠진다.
잠파노는 몇년 후, 순회 극단이 머무른 한 마을에서 젤소미나가 연주하던 귀에 익은 멜로디와 만난다.
젤소미나의 죽음을 전해 들은 잠파노, 밤의 시커먼 바닷가를 향에 목메어 우는 모습을 배경으로 영화 길은 끝이난다.
거대한 덩치의 소유자 잠파노의 눈물에는 젤소미나에 대한 회한과 고독과 무지에서 오는 사건의 결말들이 엉켜있다.
고독한 바다와 잠파노의 오열은 주제곡과 함께 언제까지나 내곁에 있다. 왜냐하면 영화 길에서 만났던 세 인물은 서울 어디에서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바로 그 잠파노인지도 모른다.
2004/04/18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