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by 이은주

프롤로그

유학 시절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줄여서 조총련계 남자친구에게 호감을 가진 적이 있었다. ‘숲속의 집’이라는 한국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였는데 손님이 없는 날은 자주 영화이야기를 하며 보냈다. 대부분 그가 본 영화를 신나게 떠들면 나는 맞장구를 쳐주고는 하였는데 손님을 기다리는 지루한 시간을 견디기에 그의 영화이야기는 정말 최고였다. 이쪽이 호감을 가지게 되면 저쪽도 호감을 가지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그에게서는 어쩐지 호감의 울타리를 넘어서지 않을 단호한 무언가가 느껴지기도 했다. 어느 날 그가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감독의 영화라면서 비디오 하나를 가지고 왔다. 그는 「가마타 행진곡」이라는 비디오를 빌려주면서 영화 원작자가 재일교포임을 자랑스러워했다. 늘 웃고 있어도 슬쩍 슬쩍 어두운 구석이 보였던 그의 사춘기 시절을 상상해 보면 조선학교를 다니며 일본사회에서 차별과 편견을 몸으로 체험하지 않았을까 싶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가마타 행진곡』의 원작자 츠카 코헤이는 성씨가 이 씨인데 ‘언젠가 공평’해 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츠카(いつか) 코헤이(公平、こうへい)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나는 가끔 그를 떠올린다. 일본어로 주문을 받고 음식을 나르는 일이 손에 익지 않은 고국의 여학생을 위해 기꺼이 도와주었으며 영화 한편으로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전했던 그를 말이다.
세상의 모든 어린이는 15년 동안의 가족 일기이며 투병기이며 극복기이다. 일하며 배우며 사랑한 기록이라고 해야겠다. 학습지 교사로서 만난 아이들, 방과후 일본어 수업 자원봉사에서 만난 아이들, ADHD가 가족력이라 할지라도 문제 없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 알콜의존증을 인정할 때 재활의 가능성이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기다려주는 과정들 그리고 가족지킴이로서 재생, 공생, 창조를 위한 책읽기, 영화보기를 통해 다양한 각도로 사회현상을 읽어내는 성장일기이기도 하다.
이 책을 통해서 아이들은 꼭 부모가 키워야 한다는 편견을 벗어나서 양육자에게 공평해졌으면 좋겠다. 엄마, 아빠만 부모가 아니니까. 아이 한 명을 키우려면 마을 전체가 필요하니까. 또한 장애와 비장애의 구분을 하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그날까지 읽혀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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