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K문학

한국인의 미의식 또는 아름다운 마음에 대하여...

by 이은주


『나무가 되고 싶은 화가 박수근』/김현숙 /나무숲/2000년 2월 21일

『장수탕 선녀님』/백희나/책읽는곰/2012년 8월 30일


[이은주 李恩珠]

일본대학 예술학부 문예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대중문화 번역가와 요양보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나는 신들의 요양보호사입니다』와 『세상의 모든 어린이(가제)』가 있다. 옮긴 책으로는 『미야자키 하야오 세계로의 초대』(좋은책만들기), 『친구가 모두 나보다 잘나 보이는 날엔』(작가정신), 『아임 소리 마마』(황금가지), 『사랑하는 다나다군』(황매), 『한일병합사』(눈빛), 『나는 드럭스토어에 탐닉한다』(갤리온), 『나는 뮤지엄샵에 탐닉한다』(갤리온), 『도스또예프스끼가 말하지 않은 것들』(열린책들), 『배를 타라』(북폴리오), 『이웃 사람』(눈빛) 등 다수가 있다.
著書としては『私は神様の療養保護者です』があり, 2020年には『世の中のすべての子供たち』を刊行する予定である。
訳書には『宮崎駿を読む(清水正)』『ウラ読みドストエフスキー(清水正)』『友がみな我よりえらく見える日は(上原隆)』『恋するたなだ君(藤谷治)』『船に乗れ!(藤谷治)』 『I'msorry,mama.(桐野夏生)』 『ドラッグストアトリッパー!(森井ユカ)』 『ミュージアムショップトリッパー!(森井ユカ)』 『映像が語る「日韓併合」史 1875年~1945年』 『隣人(初沢亜利)』など。

한국의 미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는데 지금 제 책상에는 오에 겐자부로의 『회복하는 가족』이 펼쳐져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미를 이야기하는데 오에의 글을 인용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하게 드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그것은 바로 오에가 언급한 것처럼 예술을 한다는 것은 ‘지금까지 혼돈스러웠던 것에 질서를 부여’하는 일이고 ‘젊은 예술가의 일이 신선한 것은 그 최초의 표현 형태가 낯설기’ 때문입니다(『회복하는 가족』 270쪽).

아름다움은 세계 공용어이기에 국경을 초월할 수 있어요. 그렇기에 지금 제가 소개하려는 책은 한국의 미 중에서도 단연코 오에의 글과 일치하는 ‘자기만의 세계’를 가진 한국 화가의 그림을 접할 수 있는 책인데요. 나무숲 출판사의 ‘어린이 미술관’시리즈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홍대 입구역 6번 출구에 있는 경의선 철길 책거리에서 ‘책방 지킴이’(매주 목요일 독립서점에서 근무)를 할 때였어요. 조선 후기부터 오늘에 이르는 우리나라 미술가들의 작품과 그들의 삶을 소개하는 전기 형식을 띤 화집 중에서 제 눈길은 끈 것은 김환기, 박수근, 장욱진, 이중섭, 나혜석의 화집이었는데요. 이유는 화가의 이름과 함께 화풍이나 추구하고자 하는 세계를 엿볼 수 있는 부제목이 있기 때문이에요. 예를 들면 <꿈을 그린 추상화가 김환기>, <나무가 되고 싶은 화가 박수근>, <새처럼 날고 싶은 화가 장욱진>, <아이를 닮으려는 화가 이중섭>, <한국의 첫 여성 서양화가 나헤석> 등이 그렇습니다. 이 부제만 읽어도 화가가 추구하는 세상이 느껴지지 않나요? 이 부제만 보고도 화가의 그림과 화가가 동시에 떠올랐다고 한다면 제가 너무 과장되었다고 느끼실지도 모르겠어요. 그럼 화가 한사람 한사람을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이미지를 찾아보세요. 우리는 가상의 갤러리 안에 들어섭니다. 여기 나무가 되고 싶은 화가가 있지요. 박수근의 그림은 보는 이들에게 대체 어떤 재료를 사용했기에 화강암 같은 재질이 느껴질까 궁금하게 합니다.

<나무가 되고 싶은 화가 박수근> 46쪽에는 화가만의 독특한 안료 사용을 소개해놓습니다. 게다가 톱밥과 사포를 이용해 화가의 화풍을 습작한 어린이들의 그림이 소개되어 있기도 합니다. 과연 나무가 되고 싶은 화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궁금해지지 않나요? 그래요 차례 맨처음에 ‘밀레를 꿈꾸며’라고 나오지요. 박수근은 밀레가 그린 <저녁종>을 보고 감명을 받아 화가가 되길 결심했어요. 박수근은‘땀 흘리며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즐겨 그렸다고 해요.

제가 한국의 미에 대해서 쓰고자 했을 때 가장 소개하고 싶은 한국인의 미의식은 바로 ‘땀 흘리며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것은 타인의 생각이나 삶을 공감하는 마음이 없으면 보이지 않아요. 코로나19 확진자를 치료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의료진들과 코로나19 의료폐기물 수거업체 직원과 최저시급을 받는 병원 내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들과 같이‘그림자 노동’을 하는 분들의 수고를 적극적으로 공감해야 한다는 이야기와도 같습니다. 이런 공감이 저는 아름답게 보입니다.

이쯤해서 박수근 선생님의 일화를 소개할까 합니다. 어느 여름날이었다고 해요. 박수근의 아내는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지자 외출하여 아직 돌아오지 않은 남편이 걱정되어 우산을 들고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고 해요. 잠시 후 버스에서 내린 박수근 선생은 비를 피할 생각도 하지 않고 과일장수에게로 갔데요. 남편을 부르려던 아내는 박수근의 행동이 이상하여 그저 지켜보고 있었다고 합니다. 과일 아홉 개를 한 집에서 세 개씩 산 박수근을 보고 아내가 말합니다. “당신, 비도 오는데 과일을 아무 데서나 사면 어때서.” 그러자 박수근이 이렇게 답했다고 해요. “한 아주머니에게서만 사면 다른 아주머니들이 섭섭해하잖아.” 이 일화를 듣고 그의 그림 ‘앉아 있는 여인’을 보면 뭐랄까, 가슴이 찡한 게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불러옵니다.

이밖에도 박수근에 대한 일화는 많지만 한 가지 더 소개하자면 『82년생 김지영』이 한국사회를 풍자했듯이 70, 80년대를 풍자했던 소설가 박완서의 작품 『나목』에 등장하는 화가가 바로 박수근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소설의 제목 또한 그의‘나목’연작에서 취했다고 하니 소설가와 화가의 인연이 작품과 작품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지요. 박수근의 ‘나목’시리즈는 잎도 열매도 없는 앙상한 나무를 가운데 두고 양 쪽으로 아이를 업거나 광주리를 이고 가는 여인이 걸어가는 모습을 담고 있는데요. 전쟁 직후인 당시 서민들의 삶의 모습을 연민의 시선으로 담아 그린 것이라고 해요. 학력도 없고, 스승도 없이 오직 그림만을 위하여 달리다가 고흐가 그랬듯이 세상을 떠나고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야 가장 사랑받는 한국 화가 중 한 사람이 된 박수근. 그의 투박하고 은은한 멋이 느껴지는 그림을 여러분과 함께 감상하고 싶습니다.

두 번째로 소개할 책은 아동문학의 노벨상이라고 하는 2020년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을 수상한 백희나 작가의 『장수탕 선녀님』이에요. 사노 요코의 『백만 번 산 고양이』를 아이들에게 읽어줄 때면 사랑에 대해서 말하게 되지요. 마찬가지로 『장수탕 선녀님』을 잠자리에서 아이들에게 읽어줄 때도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하게 해요. 어느 날 아이는 엄마를 따라 목욕탕에 가요. 그곳에서 선녀님을 만나지요. 선녀님이라기 보다 동네 할머니에 가까운 선녀님은 아이에게 냉탕에서 노는 법을 알려주고 아이는 이에 대한 보답으로 요구르트를 선물하는데요. 여기에서도 제가 주목한 것은 주인공 아이가 요구르트를 획득하게 되는 과정입니다. 아이가 때를 미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프지만 엄마가 자신의 때를 다 밀어줄 때까지 아이는 참습니다. 왜냐하면 때를 다 밀고나면 엄마가 요구르트를 사주기 때문이지요. 책 표지를 보면 요구르트를 세상 누구보다 맛있게 먹고 있는 할머니가 나오지요? 바로 주인공이 때를 미는 아픔을 참고 획득한 요구르트를 자신과 냉탕에서 놀아준 ‘장수탕 선녀님’께 드린 것이에요. 이렇게 ‘나누는 아이의 마음’이 제가 생각하는 한국인의 미의식이에요. 아름다운 마음이라고 번역해야겠지요.

매거진의 이전글나는 나한테만 잘 보이면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