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즈의 돌봄을 마치고 집으로 와서 ‘다녀왔습니다’하고 방문을 열자, 노인은 그때까지 점심을 들고 있지 않았다. 2시에 돌아와도, 3시에 돌아와도 그때서야 ‘아 배고파’하고 화장실로 들어가버리면 나는 노인을 미워하며 밥상을 차린다. 오늘도 역시 마찬가지. 씩씩대며 ‘어떻게 먹는 걸 잊어버릴 수가 있어?’ 하고 혼잣말을 하는데 노인의 귀는 그럴 때만 밝아지나보다.
혼자 있을 때는 보청기를 끼지 않는 노인은 읽고 있던 원고에서 눈을 들어 아이처럼 반긴다. 평상시와는 생기가 있다.
“그래서 구보타 씨는 죽었니?”
“아아~니.” 맥락도 없는 질문에 바로 답해 드리는 나.
두 번째 출간을 준비하면서 나는 편집본을 엄마에게 드렸다. 가족이야기인 만큼 당신이 먼저 읽으셔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고 원고를 읽으면서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좋겠다. 내가 아는 한 노인은 우울한 사람, 고독한 사람, 소통에 서툰 사람이다.
“난 울 뻔했어. 표현도 좋고. 이제 구보타씨 편지를 읽을 차례야.”
어제 저녁 시장에서 사온 냉동 조기를 손질하면서, 칼등으로 비늘을 박박 긁던 난 귀를 의심한다. 이렇게 순수한 독자 입장으로 평을 받은 게 과연 몇 년 만인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내가 오전에는 추리소설을 번역하면서 사람 몇을 죽이고, 오후에는 요리책을 번역하던 그 해, 엄마는 번역을 하던 딸의 등 뒤에서 아이처럼 졸랐다.
“그 뒤를 읽고 싶으니까 빨리 번역해줘.”
낱장이 완성될 때마다 아이처럼 프린트 앞에 서서 즐거워하던 엄마가 이번엔 구보타씨가 죽었을까봐 걱정이다.
“어느 부분 읽을 차례인데?” 조기 비늘을 손질하던 손을 멈추지 않고 묻는 나.
노인은 이럴 때는 어린아이처럼 순수하다.
“이(李)상, 감사합니다! 마이너스 8도의 서울 여행은 매우 가치가 있었어요. 그런데 마이너스가 뭐야?”
“영하 8도라는 뜻.”
“영화?” 이럴 땐 또 귀가 안 들리는 노인으로 돌아간다.
“아아~니. 겨울. 춥다고.”
“뭐야, 마이너스가 아니고 영하라고 써야지.”
만 원에 4마리 받아 온 조기 손질을 끝낸 내가 엄마를 본다.
노인은 아주 오래 전에 어버이날 선물로 사준 대형 국어사전을 펼쳐놓고 원고를 향한 채 구보타 씨 편지를 열심히 읽고 있다. 그런 노인에게 나는 구보타 씨 문장을 번역할 때 낯선 번역어투를 살려두고 싶었다는 걸 어떻게 설명할까 궁리하다 그만두었다. 내 안에서도 확립되지 않았는데 설명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나저나 “어떻게 먹는 걸 잊어버릴 수가 있어? 엄마, 또 저혈당으로 쓰러지려고 그래?”
“맞아. 지난번에 저혈당 쇼크가 생각보다 오래 가네. 비온다고 했지. 다 아파.”
늦은 점심상을 차려드리고 아이를 데리러 가는 길. 비 오시려나. 우산 두 개를 챙겨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