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 >작가에게

by 이은주


다음과 같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적어보았습니다.
<나신요> 덕분에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를 읽고 선생님을 만나게 되어 기쁩니다.
지구 어디에선가 저와 같은 고민을 학문으로 연구하는 분이 있다는 건 참 마음 든든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질문에 적당한 답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할 수 있는 한 정직하게 답하도록 노력하였습니다.
(음성지원이 되는 메일이나 앱이 있나요? 어깨통증과 허리통증을 달고 사는 저도 알고 싶어요^^*)
2020년 6월 8일 이은주 드림

* * *

1. 선생님께서는 요양원을 유치원으로 묘사 하시면서 동시에 그것을 하늘정원으로 부르셨습니다. 드라마 <눈이 부시게>에서도 요양원을 유치원으로 부릅니다. 책에서 어느 정도 설명이 되었지만 한 번 더 질문 드리고 싶어요. 치매 환자분들이 많은 요양원은 어떤 의미에서 유치원일까요?

-58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치매에 걸려 남편과 자식들 배웅을 받으며 요양원에 입소한 전직 디자이너의 에피소드입니다. 첫날 사회복지사가 반복해서 ‘여기가 이제 어르신 방이에요. 이쪽은 화장실이에요. 여기는 티브이가 있어요’ 하며 생활 동선을 수없이 반복하는 걸 보았어요. 그때는 봉사자로 요양센터에 정기적으로 찾아뵐 때였는데 다음에 갔을 때 그 뮤즈부터 살펴보았더니 놀라운 변화가 있었던 걸 눈으로 확인했어요. 매일 정해진 시간에 인지자극을 주는 훈련을 받으시고 가위 사용이 가능하게 된 거지요. 집중하는 시간이 짧은 뮤즈가 나비를 오리는 모습은 감동적이었어요. 뮤즈와 제우스의 느린 시간이 일정한 공간에서 정해진 일정대로 흘러가는 곳, 그곳은 안심하고 있을 수 있고 보호자가 잠시 동안이라도 자신을 돌볼 수 있도록 여유를 주는 면에서 유치원과 같다고 생각해요.

2. 선생님께서는 생과 사의 경계에서 안간힘을 쓰는 고령자 분들과의 연대를 경험하셨고, 계속해서 이러한 연대가 가능한 요양 보호 시스템을 갈망 하셨습니다.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나는 요양보호사로 적합한 사람이 아닌가’ 질문하며 절망 하셨습니다. 저는 이 연대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습니다.

이 연대가 감지되는 관계, 경험의 맥락, 연대를 느낄 때 환자뿐 아니라 요양보호사가 경험하게 되는 어떤 깊은 신뢰나 힘, 위로, 희망 등에 대해서 더 듣고 싶어요.

-싱글인 제가 돌봄을 받을 상황에 놓이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많았는데요. 가노코 히로후미의 『정신은 없습니다만 품위까지 잃은 건 아니랍니다』를 읽으면서 마음이 많이 편해졌어요. 일단 마음 놓고 배회하는 마을 네트워크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지요. 그리고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돌봄 노동자들의 인성에 기대보자고도 생각했어요. 요양보호사를 하면서 동료 요양보호사에게 감동할 때가 종종 있는데요. 이들은 직업 이전에도 가족이나 일상생활에서 이미 돌봄 노동에 대한 준비가 되어있다고 할까요. 사랑으로 가득한 분들이 이 직업을 택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흥미롭게도 자신의 돌아가신 어머니나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눈앞의 뮤즈와 제우스를 돌봄으로써 회복하고는 해요. 그러므로 요양보호사들이 직업에 대한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제도적 개선을 해준다면 좋겠어요. 사랑하고 돌보려면 정신이 건강하고 몸도 아프지 않아야 가능하거든요. 돌봄에 너무 몰입하다 보면 죽음만 생각하게 되고 만성 근골격계 통증으로 일을 계속할 수 없게 될 거라는 불안감이 듭니다.

3. 선생님의 글을 읽다 보면 요양원에 계신 분들과의 신체적 접촉에 관한 묘사가 적지 않습니다. 손을 잡고 있는다든가 뺨을 두 손으로 감싼다든가 등등 … 일상적인 관계에서는 매우 친밀한 행동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런 신체접촉이 요양원에서 선생님이 일하실 때 스스럼없이 일어나는 것인지 아니면 요양보호사로서 어떤 지향성에 따라서 행동 하신 건지 궁금합니다. 친밀성과 예의를 갖춘 조심스러움, 혹은 거리두기의 적절한 조화는 언제나 매우 어려운 일인데 이것이 하늘정원에 계신 분들과 만날 때는 어떻게 조정되는 게 맞을까요? 저는 요양원을 방문할 때마다 이 질문을 저 스스로에게 하곤 했습니다.

-자신의 몸을 닦아주고 기저귀를 갈아주는 손길이 불편하고 낯설지 않기를 바랍니다. 타인과 나의 경계가 분명하다면 기저귀를 가는 동안의 짧은 시간이 뮤즈나 제우스에게는 대단히 길게 느껴질 것 같은데요. 그런 의미에서 서로와 소통하며 손을 잡고 눈을 마주치는 일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뮤즈와 제우스의 통증에 민감할 필요가 있으니까요. 타인의 몸에 민감해지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생각해보면 역시 하루종일 누워있어서 눌려있던 등을 두드려주며 혈액순환을 돕고 욕창을 방지하도록 도와야겠지요. 타인의 손길을 갑자기 등이나 엉덩이에 느끼는 것보다 손이나 얼굴을 부드럽게 감싸거나 마사지하면서 소통하는 것을 저는 선호합니다만, 글쎄요. 질문을 듣고 보니 기회가 되면 저도 뮤즈와 제우스에게 이 부분은 확인을 하거나 개별적으로 의사를 물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4. 선생님께서는 요양보호사가 되신 이유를 두 가지 말씀하셨어요. 하나는 선생님 스스로를 그리고 선생님의 어머니를 위탁하게 될 수도 있는 요양원을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여전히 사랑하는 할머니를 그리워한 나머지 할머니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요양원에서 일하시게 되었다는 거죠. 두 이유 모두 저에게는 참으로 공감이 가는 것이었습니다.

-3교대 근무가 대부분인 요양원에서 돌봄을 하다보면 가족보다 더 오랜 시간을 뮤즈와 제우스, 그리고 동료들과 함께 있는데요. 요양원의 현실은 요양원마다 다른 것 같아요. 시립 요양원은 인지치료를 비롯한 다양한 프로그램과 학교와 종교단체에서 오는 봉사자가 늘 있는가 하면 영세한 요양원은 식사와 기저귀 캐어 이외에는 가족의 방문이 최고의 선물인 경우가 있어요. 이때 요양보호사의 역할은 가족도 되어주고, 말벗도 되어주고, 인지자극도 줄 수 있어야 하는데 대부분의 경우는 그렇지가 못합니다. 시간이 없기 때문이기도 해요. 요양보호사의 시간표는 이렇습니다. 9시 기저귀 케어/10시 경관식/10시30분 제우스의 면도/10시 40분 점심식탁 준비. 물과 양치도구 준비/11시 침대에서 식탁 이동/12시 점심식사 및 양치. 투약/1시 기저귀 캐어/2시 간식. 목욕. 프로그램 이동. 세탁/4시 30분 저녁 식탁 준비. 물과 양치도구 준비/5시 침대에서 식탁 이동/6시 저녁식사 및 양치. 투약 /앞치마 세탁/퇴근 전 체위변경 및 작업 일지 컴퓨터 입력.

이 일정을 다 소화해내기에도 벅차기에 기저귀를 갈 때 등 한 번 두드려주기, 마른 입술에 바세린 발라드리기 등의 섬세한 캐어를 하다보면 일정은 늘어지고 잠시도 쉴 수가 없으며 어떤 발작이나 이상 상황이 생기는 날엔( 설사라든가 구토, 각혈) 등등 정신적으로 말할 수 없는 피로를 느끼기에 요양보호사 개인의 노동력에만 기댄 돌봄시스템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사설 요양원의 서비스에 대한 법적 구속, 까다로운 심사에만 힘을 쏟을 것이 아니라 돌봄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차원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면 합니다.

4-1. 노인을 사랑한다는 것, 늙은 얼굴과 몸을 그리워 한다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 전위적이고 혁명적인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실제로 노인혐오가 거의 정상적인 감정적 반응으로 인정받고 있는 시대에 노인이 너무 그립고 보고 싶어서, 물리적으로 그 존재가 갈망 되어서 요양보호사가 되었다는 것은 정말이지 여러 전복적인 성찰들을 펼치게 합니다. 할머니를 사랑하는/사랑한 것에 대한 이야기들을 더 상세히 듣고 싶어요.

-‘피로사회’라고 하지요? 우리는 많은 시간을 꿈을 이루는데 투자해왔고, 마치 꿈을 이루지 못하면 안 될 것처럼 교육받았으며, 또한 꿈이 없으면 안 되는 강박에 시달려왔어요. 그러면서도 경제활동도 잘 해야 하고 때때로 여행이며 취미생활도 잘 해야 할 것 같은 시대에 살고 있지요. 노인을 사랑한다는 것. 약하고 힘이 없는 입장을 사랑하는 것. 그리고 그 약하고 힘이 없는 입장이 되어보는 것은 제 삶의 핵심일지도 모르겠어요. 할머니. 저를 위해 가슴을 늘 열어두셨던 할머니. 자식들에게는 마음 상할까봐 차마 말 못했던 당신의 마음을 이야기해주시며 소중한 존재로서 체험하게 했던 할머니. 세상에서 상처받고 정신없어 할 때 할머니 곁에서 쿨쿨 잠만 청했던 것이 나중에는 후회로 남습니다. 더 많이 티브이도 같이 보고, 더 많이 맛있는 음식도 함께하고, 더 많이 당신 가슴 속 이야기를 들어드렸어야 하는데 말이지요.

할머니의 지방이 빠진 살갗. 일을 많이 해서 뼈가 퉁그러진 손가락을 사랑합니다. 할머니의 모든 것을 추억하며 저도 할머니가 되어 갈 거예요.

5. 마지막으로 선생님의 책에서는 ‘요양보호사로서’의 느낌들, 반성들, 자부심, 속상함들이 여러 번 등장합니다. 예를 들어서 “어쩌면 그녀를 마지막으로 돌볼 요양보호사가 내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기저귀 가는 일이 애틋해 졌다”라는 문장이 있어요. 저에게는 이런 ‘정체성의 자각’이 (정치적으로든 의료실천에서든, 노동의 관점에서든) 그야말로 소중하고 애틋하게 다가옵니다.


“타인과 가족 사이에 내가 있다”는 문장도 발견할 수 있고요. “닮고 싶다, 닮아간다”는 언급도 있습니다. 요양보호사가 경험하게 되는 이 ‘특별한’ 돌봄의 관계, 자유로운(?!) 연대 및 친화력의 관계 등등을 더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신비하게도 어린이와 노인을 함께 돌보면 접점이 생겨요. 여덟 살 손자와 함께 사는데 아직 혼자 씻을 수 없어서 매일 샤워를 도와주고 있어요. 자신의 몸을 맡길 때 안심하고 노래도 부르고 즐거워하는 걸 보면 뮤즈와 제우스의 씻는 순간도 이렇게 잡아두고 싶어요. 즐거운 시간, 몸이 개운해지는 시간으로 말이지요. 손자가 새벽 2시쯤(대소변 조절이 가능하지 않을 때) 응가가 하고 싶다고 저를 깨우던 그때의 미안해하는 얼굴을 잊을 수가 없어요. 저는 아이의 아이답지 않은 표정에 반성했어요. 혹시 내가 응가할 때 싫은 얼굴을 했나 하고.. 아이가 좋은 변을 볼 때 우리는 말하지요. 아이구 장하다. 건강하네 하고. 마찬가지로 뮤즈와 제우스도 변비는 없는지 변의 색깔은 건강한지가 무엇보다 중요해요.


photo by lambba

매거진의 이전글전가족의 돌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