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의 일이었다. 아이는 잠자리에서 이런 질문을 했다. 손 아픈 할머니는 고모가 일끝내고 집에 가면 슬픈 얼굴하지요? 그렇단다. 나는 손자의 부드러운 머리를 쓰다듬으며 답해준다. 아이는 애정하는 담요를 한 손에 똘똘말고 냄새를 맡다가 다시 묻는다. 고모가 손 아픈 할머니댁 토요일하고 일요일에 가면 안 되요? 고모가 안 오면 할머니는 어떻게 해요? 음.. 고모가 일하러 가면 너를 돌볼 수가 없잖니. 그리고 토요일에는 다른 선생님이 오시거든. 일요일에는 할아버지께서 도와주실거야.
작년 여름 일용직 노동을 나갔던 할아버지가 포크레인에 손가락이 찍혀 병원에 입원하기까지 뮤즈는 여러 날 혼자 고립되어 있었다. 걱정할까봐 아내에게 사고 소식을 알리지 않고 며칠이 지나서야 연락이 왔을 때는 '타인에게 적절한 도움 요청을 하는 것도 예의'에 속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도움 요청도 요령이 있구나 배우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싶었다. 24시간 간병비만 센터에 문의했으나 지불액이 부담스러웠는지 그후 아무 연락이 없었다. 요양보호사인 나에게 아무런 조언도 구하지 않고 협상도 제안도 부탁도 없었다. 스스로는 물밖에 마실 수 없는 뮤즈는 방치되었다.
제우스의 부재가 일주일 가까이 길어지자 나는 방문객을 늘였다. 뮤즈의 재가방문에 손자와 동행했다. 뮤즈는 어린아이를 자애로운 미소로 맞이해주었고 아이는 뮤즈의 손이 아픈가 묻더니 손을 호호 불어드렸다. 수심이 가득했던 뮤즈의 얼굴에 미소가 잦은 날이었다. 그날도 꼬마는 잘 보고 있었다. 식사를 드리는 내 손길이 빨라지자 '너무 빨라요'하고 말했다. 아, 미안해요. 나는 사과했다. 뮤즈는 식사를 남기지 않고 다 드셨다. 뮤즈와 어린이 둘을 돌보다보니 마음이 바빠진 내 손길이 분주해진 걸 아이가 지적하자 그제서야 서두르던 마음이 가만해졌다. 사실 일터에 아이를 데리고 온 부담으로 마음이 소란스러웠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아이는 꼬마 요양보호사로서의 돌봄 기능이 작동되고 있었고 유효기간도 길다는 걸 어젯밤 확인할 수 있었다.
돌봄이 끝나고 우리가 현관에서 인사를 드릴 때 뮤즈는 웃고 있었다. 아이는 뮤즈의 웃는 얼굴 뒤에서 슬픔을 보았다. 복도 끝으로 서서히 멀어지는 뮤즈의 존재가 마침내 어둠에 잠기는 것을 아이는 놓치지 않았다.
작년 이맘때 주말 저녁을 뮤즈와 보내기 위해 요양보호사와 꼬마는 잠옷과 칫솔을 챙겼다. 꼬마 손님은 잠옷으로 갈아입은 후 뮤즈와 나 사이에 자리잡고 얌얌 잠이 들었다. 더이상 월요일 아침 일찍 예약된 뮤즈의 병원 동행을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다. 5년마다 받는 산정특례 '아널드 키아리 증후군과 척수공동증 ' 재심사에 필요한 의사 소견서를 받아오는 길 우리는 아이스크림을 사먹었다. 이제 제우스만 무사히 퇴원하면 좋겠네 하면서... 제우스는 1년이 다 지나서야 산재를 인정받았고 더이상 노동을 할 수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