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 나는 기리노 나쓰오의 책을 읽고 있었다. 내 스타일이 아닌 책이지만 나에게 처음으로 번역인세를 받게 한 검증받은 작가의 차기작 검토를 출판사에서 의뢰했을 때는 드디어 번역가로서 나의 무대가 왔는가 싶었다. 할머니의 발인 전까지는 번역의뢰 승낙 여부를 알려야했다. 나는 슬펐다. 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책을 읽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이 비정해보였다. 게다가 죽이고 또 죽이다 못해 트리플 섹스를 묘사하는 부분에서는 책을 덮고 분주히 움직이는 친척들을 둘러보았다. 외국어라고 해도 부끄러운 감정이 들었다. 며칠 더 시간을 달라. 상을 당했다고 왜 말 못했을까 라는 질문에 나는 담당 편집자가 바뀌고 새로 온 편집자의 첫 의뢰에 내 방식을 적용하지 못했다는 변명을 오랫동안 자신에게 들려주었다. 그런 소심한 주제에 나는 다른 곳에서 분통을 터뜨렸다. 바로 소설의 내용이었다. 나는 책 속의 사람을 죽인 날은 반드시 꿈을 꾼다. 악몽에 쫓긴다. <도쿄타워>에서 주인공은 어머니의 장례식에도 일을 하는 곤조를 보인다. 소심한 나는 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자각한다. 이건 아닌 것 같다고(할머니를 애도하는데 집중해야 했다). 모든 게 엉망이 되어 간다고 해도 그후로 한동안 번역의뢰가 오지 않아서 고깃집 철판을 닦아야 한다고 해도 아닌 건 아니어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는 지난 청춘의 상처입은 자신에게 내려주는 무대 위의 빛 같은 것이었다. 참 좋은 연극. 사람이 중심이 되는 사회에 살고 싶은 사람들이 연대하자 바로 나의 이야기가 하고 싶어졌다. 그때 많이 아까워했던 나와 그때 너답게 잘 결정했던 나에 대해서. 담당편집자에게는 미안했다. 이런 마음을 다 밝히지 못하고 말았다. 아픈 사회에서는 아픈 사람이 아프다고 말을 못하게 되어 있으니까. 그렇다는 이야기다. 나는 우울해서 우울증 약을 처방받지만 사회생활을 하고 있고 오히려 이 우울함은 요양보호사로서 돌봄을 할 때 강점이 된다. 연극을 본 후 내 생각이 더 단단해진 것 같다. 어떤 식으로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