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명화극장

김기덕의 파란대문

by 이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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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5월 20일 작성.



에곤 실레 누드화를 든 여자.
해변의 푸른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콘돔으로 풍선을 불어 날려버리는 여자.
에콘 실레의 누드화와 여성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자 그림의 초상과 여성의 얼굴이 어딘지 닮아보인다.
해변에서 새장여인숙 파란대문으로 향하는 여자. 여자 파란대문에 있었던 창녀와 부딪힌다. 그 때문에 창녀의 손에 쥐고 있던 빨간색 금붕어가 비닐 봉투에서 빠져나와 주둥이를 뻐금거린다.

고등학생 아이와 대학생 딸의 생계는 새장 여인숙의 몸파는 여자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새장 여인숙의 대학생 딸과 동갑인 여자. 딸의 방에 걸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사진과 여자의 방에 걸어 놓은 에곤 실레의 누드화는 서로 닮은 듯 하기도 하고 닮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학교 세미나에 가는 딸 승미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를 읽으며 낮시간을 보내는 여자. 여자는 밑줄을 그은 책을 읽고 있다.
'나는 편지를 봉투에 넣고 우표를 붙이고, 책상 앞에 앉아 한참 동안 그것을 골똘히 바라보고 있었다. 어쩐지 그러는 편이 그녀에게 내 뜻이 더 잘 전해질 것만 같이 느껴졌다.'

낮에 미술학원에 다녀도 되는가 묻는 여자.
벽에 물고기 그림을 그리는 여인숙 주인 아저씨. 그 아저씨에게 시장에서 고등어를 사들고 오는 여자. 여자가 사온 고등어를 모델로 물고기를 채색하는 주인아저씨. 아저씨 곁에서 노란색 페인트로 나비 한마리 그리고 제 방으로 가버리는 그녀. 그녀를 뒤쫓아 들어가는 아저씨. 아저씨의 아들은 누드 작품을 찍겠다고 치근덕 거리고 마침내 여자의 누드 사진과 함께 여자를 경험한다. 그런 모든 일을 날카롭게 지켜보는 여인숙 집 딸 승미.
가족이 함께 쓰는 세숫대야나 치약을 두고 신경전을 벌이는 승미. 승미의 지나친 말에 아무 말도 못하는 여자.
그러던 어느 날 새장 여인숙에 손님으로 찾아 온 승미의 남자친구. 주인집 딸 승미와 창녀 진아. 그리고 승미의 남자친구는 그날 밤 진아와 남자친구가 잤는지 안 잤는지 실갱이를 한다. 결국 오해를 하고 마는 승미 곁에서 도망치듯 자리를 피하는 남자친구.

그러던 어느날 혼자 낮시간을 보내는 진아를 뒤쫓는 승미. 혼자 화실에 가고, 노래방에서 있는 힘껏 노래를 하고 거리를 배회하는 진아 뒤를 쫓는 승미. 그런 승미를 눈치채고 몸을 감춘 진아.
이윽고 진아의 뒤를 쫓던 승미의 입장은 역전되고, 진아는 승미의 뒤를 쫓는다.
새장 여인숙 창밖으로 보이는 황량한 바닷가 풍경. 그 풍경을 각자의 방에서 바라보고 있는 진아와 승미.
진아를 무슨 생명보험이라도 든 것처럼 흔들어 대는 남자. 그 남자가 진아에게 귤을 사와서 껍질을 까준 후 이렇게 말한다. "지난번에 귤 까준거 기억해? 그건 진심이야. 넌 어떻게 볼 때마다 하고 싶냐. 으이 씨 보지 말아야지."
귤을 까준던 남자와 진아를 때리던 남자, 그리고 몸을 판 돈을 가져가버리는 남자, 이 모두가 동일인이다. 아니 진아의 누드 사진을 찍겠다고 덤비는 여인숙 집 주인 아들이나, 쓰레기를 테우거나 담벼락에 페인트로 물고기 그림을 그리던 주인집 아저씨 모두 여인숙을 찾는 손님과 다를 바 없다.
여자는 남자에게 욕망되어지는 존재라는 걸 자각하고 있는 걸까. 그녀가 100분 동안 타자에게 보여주는 따스한 시선은 말못하는 금붕어와 동성인 승미뿐이다.
승미는 여자에게 묻는다. 자신의 남자와 잤는가고.
"이상하지.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 이렇게 말한 승미는 진아를 대신해서 손님을 받는다.
우정과 사랑의 경계.
나는 이 부분이 약간 아슬아슬 하게 여겨졌다.
비정상적일 정도로 성에 민감한 승미와 모든 것을 초월한 듯한 태도의 진아. 붉게 칠한 입술의 진아와 짧게 컷을 한 승미의 모습이 어쩐지 도덕과 윤리와 인습을 부정하듯이 보인다.
어쩌면 이들은 욕망에 충실한 남성을 제외시킨 다른 세상에 가 있는 듯이 보이기도 하다.
섬처럼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녹슨 원형 계단 저편에서 발장난을 치며 웃고 있는 진아, 그 옆에서 환하게 미소짓는 승미. 그녀들의 웃음 뒤에 보이지 않는 긴장감이 흰파도와 함께 넘실 거린다.
경계를 넘나드는 김 감독의 취향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어쩌면 김기덕 감독은 너무 많은 짐을 한꺼번에 혼자서 짊어지고 있는 건 아닌지. 안과 밖. 이쪽과 저쪽. 남자와 여자. 진실과 거짓. 생과 사. 이 모든 숙제를 풀려고 하는 건 아닌지. 감독은 풀리지 않는 숙제를 누구보다 먼저 풀려고 애쓰고 있는 모범생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