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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주 Oct 06. 2020

교실 안의 야크

미래를 어루만지는 직업으로서의 선생님


코로나19로 문을 닫았던 학교가 2학기 수업을 재개했다. 수업은 재개했지만 등교일이 정상화된 건 아니다. 훗날 코로나19가 아이들에 끼친 영향을 연구한다면 아이들의 정서, 학습, 건강 전반에 걸쳐 연구해야 할 것이다. 2020년대의 아이들이 무엇에 웃고, 무엇에 울고, 무엇에 결핍을 느꼈는지를 말이다.

<교실 안의 야크>를 보았다. 강을 따라 가볍게 6일 정도 걷다가 그 다음에 좀 올라가는 곳에 학교가 있는 세상 끝 학교로 전근을 가는 ‘유겐 도지’ 선생님의 로드 무비인 셈인데 교실도 없고, 운동장도 없고, 다음주부터는 ZOOM의 세계에서 선생님과 만나게 될 손자를 양육하고 있는 나에게 강렬하게 다가오는 것이 있어서 추석 연휴 극장을 찾았다.

제목이 왜 '교실 안의 야크'일까? 영화를 보기에 앞서 제목에 끌렸다.
전기도 없고 이동통신도 없는 곳에서 오직 태양에너지에 의해 촬영되었다는 <교실 안의 야크>는 말 그대로 친환경 영화였다. 마을 밖으로 한 번도 나가본 적이 없는 주민을 캐스팅했다는 정보를 접했을 때는 탄식이 나왔다. 그들의 노래는 영혼을 울리고, 그들의 대화는 가슴에 무언가 균열을 일으켰다. 아니 부스럭 부스럭 소리가 났다. 교실 안의 야크가 풀을 먹으며 똥을 싸는 동안 아이들은 곁에서 선생님과 함께 공부를 한다.

여기까지 적고 있을 때 절두산 성지 순례 후 들어간 카페의 옆 테이블에서는 이런 대화가 들린다.
“어떤 새를 쓰고 싶으세요. 파랑새죠.”
“제가 CG를 이용한다면..”
엿들으려고 한 건 아니지만 들리는데로 옮겨적는다. 그래 루나나의 자연을 CG로도 옮길 수 있겠지만, 은은한 사람들 목소리, 스크린을 뚫고 전해지는 신령스러움, 존재 방식은 전할 수 없겠지. 보이지는 않지만 감독이 서랍 안의 물건에까지 그 시대의 물건을 준비해두는 것처럼  <교실 안의 야크>의 촬영 방식, 캐스팅 모두 사라지는 것들, 지켜야 할 것에 대한 기도가 아니었을까 싶었다.
루나나까지 가는 과정. 생활방식. 그들의 노래는 우주와 자연을 대하는 방식에 대해 고민하게 했다.

야크 똥으로 난로에 불을 붙이고, 화장실도 전기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외딴 곳에 발령이 난 선생님이 이런 곳에서는 못 가르치겠다는 말을 하자 루나나에서 2시간이 걸리는 곳까지 선생님을 마중 나온 촌장은 알았다고 한다.
그런 촌장에게 나무그릇에 식사를 대접받으며 너무 정중하시다고 말했던 유겐 도지. 그런 그에게 촌장은 비난인듯, 탄식인듯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우리 나라를 가장 행복한 나라라고 하지만 교육을 많이 받고 능력있는 사람들은 모두 다른 나라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하지요.

세계의 끝 루나나에서 족장의 환대를 받으며 나무그릇에 밥을 먹는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는 말한다. “너무 정중하십니다.”
“선생님이라는 직업은 미래를 어루만지는 분이니까요.”
촌장이 대답한다.
이 장면은 마침내 호주 비자를 받고 자신의 꿈을 이룬 마지막 장면에서 울림을 준다. 술마시는 사람들로 시끄러운 바에서 가수의 꿈을 키우며 노래하던 유겐 도지. 그가 노래를 중단하자 술집 주인은 고함친다. '이봐, 유지 돈을 받은 만큼 노래를 해야지 '

코로나19 시기를 관통하는 이때 <교실 안의 야크>에서 붙잡고 싶은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미래를 어루만지는 직업'으로서의 선생님의 가치다.

손자는 다음주부터 줌수업에 들어간다고 한다. 초등학교 1학년 줌수업 준비를 하면서 과제물도 내주고 과제물에 대한 피드백도 해야 할 선생님들의 미래를 걱정한다. 업무가 늘었으면 늘었지 줄지는 않을 것이다. 교육부는 학교를 통제하려고 할 것이고, 학교는 선생님을, 선생님은 학부모와 학생을 통제하려고 할 것이다. 우리는 예전보다 많은 설문지에 응답해야 할 것이며 컴퓨터에 접속하고 있어야 하는 시간도 늘어나지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다.그렇다면 미래를 어루만질 여유 따위는 조금도 없지 않을까.

초등학교 저학년 학부모 입장에서 보면 우리 삶 전체를 변화시키고 있는 코로나19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방법은 어쩌면 줌수업이 아닐 것이다. 선생님의 교육 철학과 학부모의 요구와 아동의 현상태를 서로 주고 받을 수 있는 쌍방향, 양방향 소통일 것이다. 지금 확인안 해도 좋으니 우리 아이의 변화를, 고민을, 관심 사항을 읽어주고 적절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장이 필요하다. 줌수업에서 두 자리 수 덧셈뺄셈 진도를 나가는 것도 좋겠지만, 아이들의 성장 과정을 부모와 선생님이 상호 교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코로나19는 '미래를 어루만지는 선생님'을 과연 얼마만큼 정중하게 대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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