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딸이 제 아이의 앞길을 망쳤어요

by 이은주

겨울이었다. 인천공항에서 회기역까지 단숨에 달겨가서 갓난아이를 만났다. 첫눈에 반했다.
아기를 낳기 전에 한마디도 상의하지 않은 배신자인 큰조카. 의자에 앉은 그녀의 뒤에서 머리를 감싸안으며 눈물을 흘렸다. ‘너에겐 아무도, 정말 아무에게도 고민을 상담할 어른이 없었던 거니? 고모에게도, 할머니에게도, 다른 어떤 어른도..‘ 정신이 아득해졌다.
겨울 내내 후드티만 입고 앞주머니에는 화장품이 가득 들어 늘 캥거루 같던 큰조카에게서 아무 이상한 모습을 발견할 수 없었던 내가 환장할 정도로 싫었다.
그것도 모르고 큰조카의 남자친구가 집을 오고가는 것을 반겼었다. 그러니까 그들은 말할 기회를 찾고 있었던 거다. 새벽에 단 한번 출근하는 내가 현관에서 신을 신자, “고모” 하는 목소리가 들렸었다. “응? 왜?”
“아니에요. 아무것도.”
가족이 모두 잠들어 있는 새벽에 자던 아이가 깨어나 불렀으면 할말이 있었을 텐데 나는 왜 신발을 벗고 들어가 잠시 아이를 살피지 못했을까. 알았다고 해도 별다른 선택도 없었겠지만.
아이의 머리 위로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다 큰조카의 남자친구인 준영이에게 물었다.
“네가 말하기 어려우면 내가 네 부모님께 전화해줄까?”
준영이가 끄덕였다. 일하다가 달려온 준영이의 어머니와 병원 1층 찻집에서 마주앉았다.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고 아이들에게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눈물을 흘리고 있는 나에게 사돈이 될 분은 사슴 같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고모님도 마음이 여리시군요.”
어디에 신혼 방을 차릴지 의논해야했다. 그러나 아이들의 의견은 달랐다. 처음에는 아이를 낳으면 결혼할 수 있을 줄 알았다고 했었다. 그 다음엔 잠도 못자고 갓난아이를 돌보던 아이들이 자신들의 꿈이 있기에 아이를 돌볼 수가 없다고도 했다. 준영이의 부모님은 시간만 나면 준영이와 큰조카를 헤어지도록 설득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당신 딸이 제 아이의 앞길을 망쳤어요.”
같은 여자인 준영이의 엄마 입에서 그 말을 들은 다음 날 나는 주민센터에 가서 큰조카의 성을 따서 출생신고를 했다. 정명이는 우리 집에서는 귀한 아이였고,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였다. 그들이 기저귀며 분유 값을 주지 않았다는 사실에 나는 분개했고, 돈이 없어도 이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양육자의 책임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또 듣지 말아야 할 말도 준영이의 입을 통해 들었다.
“나중에 아기가 보고 싶으면 아버지가 양육권을 행사할 수 있으니까.” 물론 괴로워하는 아들을 달래려던 수작이었겠지만, 사실 그 말을 입에 담는 순간 인간실격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큰조카를 응원한다. 큰조카는 아버지가 알콜중독으로 입퇴원을 반복하면서 가장 많은 상처를 받았다. 부재중인 엄마로 인해 소소한 사랑을 잃었다. 내가 제일 두려워했던 것은 가족력을 극복하지 못하고 의욕적으로 사회생활을 못하는 거였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였다. 그녀는 부지런히 이력서를 냈고, 자기소개서에는 ‘할머니가 키워주었고, 사랑하는 사람의 아기를 가졌지만, 지금은 혼자서 돌보고 있으니 뽑아만 준다면 정말 열심히 일하겠다’고 쓰기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을 확실히 하고 있다. 지금은 파견직에서 계약직으로, 올해 정사원 심사를 받는다고 한다. 나는 큰조카가 회사에서 늦을 때면 정명이에게 이렇게 설명한다.
“엄마가 회사에서 아주 중요한 일을 해서 그래, 훌륭한 사람이기 때문에 늦는 거야.” 이 말은 예전에 내가 어렸을 때 내가 일하는 엄마를 그리워하면 이모나 할머니가 해주셨던 뉘앙스와 같다. 우리는 모두 엄마가 되기 서툰 엄마를 가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엄마이기에 열심히 해도 아이들의 마음 속 어딘가에는 곰보처럼 상처가 덧나있을지도 모르겠다. 확실한 건 나중에 아주 나중에 그 모든 것을 이해할 나이가 되면 한줄기 투명한 눈물을 흘리면서 툴툴 털어내면 되고, 서로 맛있는 음식을 나누어 먹으면 된다고 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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