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미즈선생님을 처음부터 좋아하지는 않았다.
선생님과의 첫 만남은 두 번 다시 보지 않을 것처럼 면담 도중 얼굴을 외면해버린 채 끝이 났다.
몇 달간 밤잠을 설치며 준비한 청강생 논술시험을 치고 면접관 앞에 앉자 두 교수님 중 가장 직설적인 질문으로 나를 곤란하게 만든 분이 시미즈선생님이었다.
웃음기하나도 없는 표정으로 콧수염이 입술을 덮어서 신경을 곤두세워야 알아들을 수 있는 질문이 나는 마음에 안 들었다.
예술학교는 등록금이 비싸서 도중에 그만두는데 돈은 있는가라는 취지의 질문을 받고 나는 당황했다.
대학에서 무슨 공부가 하고 싶은지, 졸업하면 어떤 일을 할 것인지 잔뜩 준비해간 답변은 아무쓸모가 없었다.
나는 낙담했다. 학문의 전당인 대학에서 이런 면접을 볼거면 굳이 다닐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듣기는 알아들었지만 적절한 답변이 떠오르지 않은 내가 짧게 대답했다.
"꿈을 위해서라면 돈은 관계없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건방진 답변이었다. 그러나 그때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않았다. 내 마음은 이미 정해졌다. 돈만 밝히는 예술학교 따위 들어가나봐라.
청강생 합격 발표를 확인하고 첫 수업에 들어가 앉았는데 예의 그 콧수염 교수가 들어와서 나는 의자에서 얼음이 되었다. 다시는 안 볼 것처럼 고개를 돌린 채 면접을 본 나를 기억할 텐데.. 내가 문예과 커리큘럼을 보고 실컷 동그라미를 친 대부분의 과목은 시미즈 선생님 담당이었다.
면접할 때 선생님은 알고 계셨을 것이다. 짧은 머리에 눈은 독이 난 듯이 번쩍거리고 사나워보이던 한국의 여학생이 6과목 중 비교문학을 빼고 전부 자신의 강의에 동그라미를 쳐온 것을..
과목 소개에는 레포트가 많고 꼭 책을 읽고 참석할 작정이 아니면 오지 않는게 좋다는 내용이 도전욕구를 자극하게 했다. 그런 분이 첫 면담에서 돈은 있는지 물었다는 것을 오래도록 용서할 수 없었다.
시미즈 선생님의 수업은 좋았다. 나를 위한 최적화된 수업이었다. 3.4학년 전공 수업인데 수업에서 거론되는 거의 대부분의 책을 읽었기에 일본어가 부족하다고는 하나 발표에도, 토론에도 참여할 수 있었다.
수업 중간에 선생님은 감정이 격해지셔서 탄식하기도 했다.
"여러분 문예과 학생이 책도 안 읽고 글도 안 쓰면 뭐 합니까? 수업 끝나면 아르바이트만 할 생각하지 말고 이상처럼 책 좀 읽으십시오."
강의실 안은 조용해졌다.
내 입장은 난처해졌다. 나에겐 아직 친구가 하나도 없을 때여서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었다.
터벅터벅 집에 와서 코펠에 밥을 짓고 티브이도 없는 방에서 저녁을 먹고 늦게까지 아사히어린이신문 번역연습을 하다가 잠드는 나날들이었다.
하루는 대학에서 발행하는 문예지에 몇 년전에 졸업한 유학생이 번역한 미야자와 겐지의 단편을 한글로 읽다가 사전을 찾아보고는 작품의 제목은 <산배>가 아니라 <돌배>가 정확할 것 같다고 말씀드렸더니 시미즈선생님으로부터 예상 밖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한국인들은 서로 잘못을 이른다던가, 뭐 그 비슷한 표현이었다.
나는 반박할 수 없없다. 그렇지 않다는 정확한 논리를 댈 때까지 가슴 깊이 담아두기로 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서로가 다치지 않게 오류를 바로잡아야 할지 고민하게 되었다.
시미즈 선생님이 가지고 계신 한국인에 대한 오해 혹은 편견을 수정할 수 있도록 오랜 시간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역사도 세월에 따라, 보는 시각에 따라 새롭게 공부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시미즈선생님의 방엔 3.4학년 학생들이 녹차를 마시며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다 가고는 했다. 나도 어느 날 선생님의 과사무실에 갔는데 사방이 책으로 둘러쌓여 있었고 책상 위까지 전부 책이었다.
출퇴근 시간을 이용해서 하루 400자 원고지 5장을 꼭 쓰는 게 철칙인 선생님은 정기적으로 평론집을 발행하셨다. 책 가격은 2천엔 정도 였다. 헌책방의 문고판이 100엔, 200엔 정도 주면 살 수 있는데 반해 양장본으로 만든 평론집은 일주일치 교통비 정도였다.
가난한 유학생에게 시미즈 선생님의 책 인심은 좋으셨다. 선생님이 신간을 내실 때마다 아이처럼 기뻐하시는 모습은 몹시 부러운 일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책 내지에 붓으로 쓴 선생님의 사인을 손끝으로 쓰다듬기도 하고 새책에서 나는 잉크 냄새를 맡으며 전철을 기다릴 때 나는 다른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 감정을 뭐라고 표현해야할까. 충일감. 세상과 나와의 충일감으로 가득차서 바라본 플랫폼은 멀리 철길과 철길이 만나는 지점에 뿌옇게 아지랑이가 넘실대고 있었다. 아름다웠다.
photo by lambb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