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도쿄 3부작

다양한 세대와의 우정

by 이은주


마리 아줌마의 집에 초대받은 날부터 졸업을 하고 귀국하는 그날까지 마리 아줌마 가족과의 우정은 H·모옴의 <인간의 굴레>에 나오는 필립처럼 매번 흔들리는 나그네를 위로하는 데가 있었다. 마리 아줌마는 안과 나나, 그리고 마리 아저씨를 통해 다양한 세대의 사랑을 받게 해주었다.
우선 나나와 만났던 게 기억에 남는다. 다섯 살인가 여섯 살쯤으로 기억되는데 부엌에서 식사준비를 하는 엄마에게 다 들리도록 내게 다가와 귓속말을 했다.
“이상, 오늘 아침부터 이상 온다고 엄마가 청소하느라 엄청 바빴어.”
나는 귀여운 꼬마가 아주 진지하게 엄마 이야기를 하는 통에 웃음을 참느라 힘이 들었다. 다음은 안의 등장인데 나나에 비해 너무 의젓했다. 초등학교 1학년이나 2학년었을 텐데 예의 바르고 정중하게 예쁜 일본어를 썼던 것으로 기억한다. 퇴근해서 온 마리 아저씨도 우체국에 근무하셨는데 젊은 내가 보기에 정말 이상적인 가장이었다. 설거지를 하는 건 당연하고 대체로 가사분담이 이루어진 것 같았다. 두 소녀와 놀아주는 것도 거의 마리 아저씨가 담당했는데 보드게임 중에서 젠가 게임이 그렇게 흥미진진한지 처음 알게 되었다. 게임 중에 나무 블록이 무너지면 나나는 막 울었고 그럼 아저씨는 사람 좋은 웃음을 웃으며 다시 나무 블록을 쌓아서 나나의 기분이 풀릴 때까지 놀아주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스무 해가 넘도록 ‘아빠’라는 단어에 굶주려있던 어린 자아가 꿈틀거려 부럽고 부러웠다. 스무 살이 넘은 어른이 아빠를 찾아 헤매는 걸 의식하게 되었다고 할까. 그런 욕구를 처음으로 솔직히 인정하게 된 계기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마리 아줌마는 자신의 역량이 미치는 한 일본 문화의 모든 걸 체험하게 해주었다. 아이들의 시치고산(7533세, 5세, 7세가 되는 어린이들의 성장을 축하하기 위해 신사나 절을 참배하는 행사.) 행사에 함께 가거나 히나마츠리(여자 어린이들의 무병장수와 행복을 빌기 위해 해마다 3월 3일에 치르는 전통축제 때 가정에 꾸미는 히나 인형(사람 모양의 인형) 제단)를 체험하게도 하고 여름의 오봉 축제 때는 이웃을 초대해서 일본 전통 유카타를 입어볼 수 있게 해주었다.

일본 풍경에서 손꼽는 풍경이 있다면 나는 자전거 풍경을 꼽는다. 교복 입은 남학생 자전거에 짧은 교복 치마를 입은 긴 머리 여학생이 뒷바퀴 양쪽 볼트에 운동화를 밀착시키고 서서 가는 풍경 하나와 자전거 앞 바구니에 한 아이를 태우고 뒷좌석에 또 한 아이를 태운 채 장을 보고 달려가는 주부의 모습이다. 마리 아줌마의 자전거 탄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대단했다. 어떻게 저렇게 가냘픈 사람 몸에서 저런 마력이 나오는걸까. 아줌마의 삶의 태도는 진지했고, 정성을 다하는 것이었으며 얼마간의 긴장감이 돌기도 했다. 나는 그런 그녀가 멋있게 보였다.
photo by lamb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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