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도쿄 3부작

시미즈 선생님과 김영동

by 이은주


‘그대의 제일에 나는 번번이 이유를 달고 가지 못했지’로 시작하는 김영동의 <멀리 있는 빛>을 오치아이 방에서 얼마나 자주,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모른다. 한여름밤 불을 끄고 누워 듣고 있으면 눈가로 또로록 눈물이 흘르다가 마침내는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나 같은 똥통이 사람돼간다고 사뭇 반가워할 거야’에 한번 울고, ‘유치한 단청색깔로 붓에 힘을 뺀 제자를 보면 그대의 깊은 눈이 어떤 내색을 할지’에 끄윽 하고 울음을 참지 못해 또 한번 울고, ‘싹수가 노랗다고 한마디만 해주면 어떠우’에 펑펑 우는 것이었다.

그렇게 울고 나면 개운해져서 잠이 들었다. 나는 알고 있었다. 시 쓰기에도, 소설 쓰기에도 재능이 없음을. 그리하여 평론을 전공하기로 마음먹게 된 것을 자신에게만큼은 속일 수 없었다. 김영동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시도 쓸 수 없고, 소설도 쓸 수 없는 자각이 나를 슬프게 했다. 문예과에서는 여름방학 숙제로 단편소설을 써서 각자의 소설을 묶어 문집을 내는 것이 과제물이었다.

모국어로 쓰기도 벅찬 소설을 외국어로 써서 내야하는 일은 자신을 몹시 압박했다. 학생들 앞에서 청강생 때부터 ‘이상처럼 책 좀 읽으라’는 말을 듣다보면 잘 쓰고 싶은 욕구가 생기게 마련이다. 선생님께 좋은 평가를 받는 일은 아주 중요했다. 그런 만큼 잘 쓰고자 하는 욕망은 자신의 재능을 의심하게 했다. 그런 어느 날이었을 것이다. 나는 이런 마음이 녹아든 김영동의 앨범을 테이프에 녹음하여 시미즈 선생님께 드렸다.

“한국의 음악인데 한번 들어보세요.”

부모님과 같은 연배인 시미즈선생님은 학생들과 접하고 계셔서인지 젊은 감각을 가지고 계셨다. 선생님의 신간이 나오기 전 표지 시안이 오면 우리들에게 묻고는 하셨다. 어느 표지가 좋은지. 그날도 그런 대화를 나누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선생님께 여쭈어보았다.

“지난번에 드린 한국 음악은 들어보셨나요?”
“듣고 있어. 일주일 동안 듣고 있지.”

물론 나도 좋아서 매일같이 듣고 있기는 하지만, 이국의 음악을 일주일 내내 듣고 있다는 답이 돌아올 줄 예상도 못했기에 오히려 당황했다.
그랬다. 시미즈선생님은 아주 작은 신호도 놓치지 않는 평론가였다. 그것이 한국에서 온 유학생이 건네준 음악 테이프일지라도 듣고, 또 들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선생님은 화가인 아내와의 협업에도 열심이셨다. 그림을 종종 표지그림에 사용하시고는 했다. 주변 사람들 재능을 일깨우고 주목하여 하나의 완성으로 나아가게 하는 일. 나는 닮고 싶었다.

photo by lambba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삶은 쓸데없는 농담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