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도쿄 3부작

나나의 일본어

by 이은주


나나의 일본어는 서툴었지만, 그때의 내가 필요로 하는 생활 회화를 그대로 들려주었기에 만날 때마다 문화적 충격이었다. 대학 축제가 한창이었던 어느날 안과 나나를 데리고 에코다 캠퍼스를 안내하기로 한 날 이동은 버스를 탔다. 그때까지 일본어로 ‘차멀미’라는 단어를 알지 못했다. 나나 또한 ‘차멀미’라는 단어를 몰랐는지, 쓰지 않았는지 모르지만, 버스를 타고 얼마쯤 가자 ‘이상, 기분이 나빠.’라고만 했다. 나는 놀러가는 아이에게서 ‘기분이 나쁘다’는 말을 들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기에 당황했다. 우리는 마치 외국인끼리 일본어로 소통하듯 전하려던 바가 뭔가 조금씩 달랐다. 그래서 그런지 그 꼬마 아가씨만 생각하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나나가 다니는 어린이집은 전철역에서 가까웠던 걸로 기억한다. 퇴근 길 부모들이 아이를 찾아 집으로 갈 수 있도록 편리한 위치에 있었다. 한번은 어린이집 발표회에 초대되어 갔는데 그곳에서 또 한 번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강보에 쌓인 갓난아이도 발표회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의 동화 <장갑>이라는 극이 시작되면 마이크를 든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할아버지는 산 속에 땔감을 마련하기 위해 숲으로 왔어요. 장갑 한 짝이 빠진 줄도 모른 채 말이에요.”
발표회장 바닥에는 굵은 밧줄로 장갑 모양이 만들어졌다. 이제 그 장갑에 차례차례 아이들이 주인공이 되어 들어가기 시작하는데 제일 첫 번째 등장이 바로 선생님의 품안에 안긴 갓난아이였던 것이다.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신비하고 아름다웠던 발표회 체험을 말이다. 아이들 하나하나를 골고루 발표회에 참여시키기 위한 선생님들의 노력이 그 연극에 녹아있었으니까. 그 연극이 끝나자 나는 그 동화를 진심으로 이해한 기분이 들었다.

또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마리 아줌마가 초대하여 나나의 초등학교에도 갔었는데 그날은 우리 나라 민방위 훈련처럼 ‘지진대피훈련’이 학교 공식 일정에 포함되어 있었다. 아이들이 어떤 신호에 따라 일제히 대피하는 훈련을 참관하면서 마리 아줌마가 나나의 담임선생님과의 상담 내용을 들려주었다. ‘세계지도를 그리는 시간에 아이들은 보통 중앙에 일본을 그리는데 나나는 한국’을 그렸다고 했다. 아이들이란 정말 순수하구나 감탄하면서 나는 웃었다.
photo by lamb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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