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마 도쿄이야기를 못 끝낼지도 모르겠다. 이제부터는 쓰기 싫은 부분, 실패의 역사, 오욕의 역사를 기록하는 일이 남아 있다. 나의 진심이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쓰고 싶은지, 쓰고 싶지 않은지. 출판사 오너였던 선배가 사라지고 빚을 지게 되고 마리아줌마가 일본에서 건너와 빚을 갚아주고 그러는 동안 안과 나나가 성장을 해서 결혼을 한 세월을 통해 과연 내가 지키려고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사람’을 지키려했는데 지금은 자신이 무엇을 소중히 지키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나는 선배를 믿었다. 그가 내게 보여준 우정을 지키고, 나아가서는 내 일자리를 지키고 싶었는데 그는 출판사에서 끝내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무리를 해서 ‘사람’을 지키다보면 그 사람을 잃는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이렇게 쓸쓸한 생각이 들 때면 자주 안과 나나를 떠올린다.
“이상은 뭐든지 잘해.” 하고 영화 토토로의 메이처럼 확신에 찬 어조로 내게 말해 주던 나나.
“이상에게서 뭐든지 배웠어. 요리도, 종이오리기도, 만들기도.” 3층 자기 방으로 뛰어올라가던 신부가 되기 전날의 안을 떠올리고는 한다.
한동안 마리아줌마 가족으로부터 나는 이런 편지를 받고는 했다.
‘이상 무리하지 않아도 좋으니까 건강 조심해야해.’
도쿄에서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표 예약을 하고 들떠있었을 어느 날을 상기한다. 마리 아줌마 가족과의 마지막 식사였다. 마리 아줌마는 그 무렵 우체국 사택에서 3층 단독주택을 지어서 이사를 했다. 나는 이삿짐 푸는 것을 도우러갔다. 1층엔 욕실과 손님방이, 2층엔 부엌과 안방과 화장실이, 3층엔 안과 나나의 방이 각각 있는 집이었는데 한국에 남아있던 일식 가옥 구조와 비슷했다. 나는 주로 안의 방 정리를 도왔는데 그것이 소녀 안과의 마지막 추억이었다. 그 후로는 안의 성장하는 모습을 사진 속에서나 만났다. 결혼식을 올릴 신부의 모습으로 재회하게 될 때까지 나에게는 늘 꼬마 안의 존재로만 떠올랐다.
마지막 식사를 하고 돌아오는 길 오기쿠보 역에서 마리 아줌마는 눈물을 보이셨다. 서울로 돌아갈 날짜만 헤아리던 나는 마리 아줌마의 쓸쓸함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서 마리 아줌마 가족이 쓴 편지를 보고 그제야 눈물을 흘렸다.
편지는 마리 아저씨의 것을 먼저 읽었던 것 같다.
‘이상은 안과 나나의 언니. 이상은 나의 딸입니다’
나는 가끔 달이 되어 도쿄의 오치아이에 다녀오고는 한다. 나의 사랑하는 친구들이 있는 곳. 그리고 잊었던 꿈을 떠올린다. 안데르센이 되고 싶었던 못난 오리새끼가 백조가 되는 꿈. 그림책 속에서 보았던 백조가 커다란 날갯짓을 하며 호수를 차고 날아오를 때의 아름다움을 글로 쓰고 싶었다. 내가 쓴 도쿄이야기를 읽은 사람들이 어디에 그런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 어디를 가면 그렇게 살 수 있는지 지도를 펼치고 찾아보는 그런 글을 기록하는 동안 코로나19도 다른 질병처럼 과거 속으로 사라져주길 간절히 바랐다.
photo by lambb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