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영화였던 걸로 기억한다. 녹색의 풍경에 소년들이 주인공이었고 그들은 어째서인지 호수 곁에 자란 버드나무 줄기에 매달리기를 즐겨했는데 그 나무 이름이 '용기를 재는 나무'였다.
안과 나나가 사는 곳은 우체국 사택이어서 집 앞에는 오래된 나무가 있고, 안과 나나는 그곳에서 또래 아이들과 뛰어놀았다. 나무타기가 장기인 나나는 겁도 없이 아이들 중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는 했는데 나는 그때마다 예전에 보았던 영화 속 ‘용기를 재는 나무’가 떠올라 나나가 떨어지면 언제라도 받아줄 요량으로 가까이서 올려다보고는 했다.
후일담이기는 하지만 마리 아줌마 집에 가정교사가 살고 있다는 소문이 났다고도 했다. 모두 여름방학에 일어난 일이다.
안과 나나, 아이들이 집에 남아 엄마가 퇴근하기만을 기다리는 여름방학이면 나도 아이들을 집으로 초대했다. 나도 일하는 엄마가 퇴근해서 돌아올 때까지 남동생과 단둘이 집을 보고 있었던 어린시절이 있었기에 아이들 마음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엄마는 장녀인 나에게 엄마가 없으면 ‘누나가 엄마야’하고 이르고는 했다. 그러므로 안의 입장에 감정이입이 될 때가 많았다. 나나보다 고작 서너 살 많은 어린이가 부재중인 엄마를 대신해서 여동생을 돌봐야하는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아서 나는 아르바이트가 없는 날은 기꺼이 아이들을 초대해서 함께했다. 마리아줌마가 출근길 오치아이의 방문을 두드리면 나는 문을 열었다. 문 앞에는 두 꼬마아가씨들이 엄마 손을 잡고 가방을 짊어진 채 나를 올려다보았다. 마리아줌마가 우체국 점심시간에 맞추어 오치아이 방으로 점심식사를 하러 올 때까지 4조 반 다다미방에서 숨바꼭질도 하고 여름방학 만들기 숙제도 하고, 그래도 심심하면 빵집으로 달려가 유행하던 메론 빵을 사 먹기도 하며 하루를 보냈다.
오치아이를 흐르던 좁은 묘쇼지강 위의 다리를 건너 마을을 한바퀴 돌면 안과 나나의 눈은 모험심으로 가득한 채 반짝였다. 어떤 날은 아르바이트가 고되어 도저히 놀아줄 수 없을 때도 있었다. 그런 날이면 우린 병원놀이를 시작했고 나는 침대에서 눈을 감고 있어도 좋았다. 그럼 안과 나나가 여기저기 진찰을 하고 주사를 놓아주고 보살펴주었다. 병원놀이도 시큰둥해지면 나는 도서관 놀이를 제안했다. 방 안의 책들을 모두 종이에 적어서 얼마나 있는지 알아보자고 하면 안과 나나는 기꺼이 종이에 적는 놀이를 했었다. 둘째인 나나는 경쟁심이 있어서 언니에게 지지 않으려고 부지런히 한글자 한글자 그림처럼 옮겼다. 그날 안은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방안의 일본 책은 물론 한국에서 가져 온 책 제목을 한글로 또박또박 썼다. 아이들의 거침없는 상상력이 모르는 외국어를 거침없이 쓰게 한 것이다. 그것도 아주 예쁘게 적어주어서 안을 칭찬해주었던 기억이 난다.
아르바이트하던 고급 레스토랑에서는 와인도 팔았었는데 그곳에서 모은 코르크 마개로 여름방학 숙제를 만들어 집으로 돌아간 날의 안의 모습은 정말 행복해보였다.
돌이켜보면 안과 나나가 있어서 외로움 병에 걸리지 않았고, 마리아줌마 가족이 있어서 생일날에도 야끼니꾸 식당 아르바이트를 쉬지 못하고 정신없이 써빙을 하고 돌아와서도 슬프지 않았다. 익숙하지 않은 노동에 비록 발바닥에서는 불이 났어도 침대에 걸터앉아 퉁퉁 부은 발을 풀어주며 자동응답기에서 재생되었던 생일 축하 메시지에 위로받았다. 새롭게 익힌 바이올린으로 연주한 나나의 생일 축하곡이 끼잉끼잉 하고 흘러나올 때 창밖으로는 가을이 깊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