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절로
그러니까 학교가 시작되고 교문에서 아이와 빠이빠이를 하고 출근하는 길에 만나는 꼬마가 있는데 늘 오 분쯤 지각을 하는 것이었다.
꼬마를 문방구 앞에서 만나면 3분 늦은 것이고, 세탁소 앞에서 만나면 5분쯤 늦은 것인데 우린 자주 세탁소 앞에서 마주치는 것이었다. 또래 1학년보다 작은 꼬마를 어디서 봤나 했는데.. 아이의 어린이집에서 보았던 기억이 났다.
"저는 허삼이에요." 꼬마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예의바르게 자기소개를 했었고, 예의 그 웃음(우리 아이에게서도 발견되고는 하는 결핍된 아동의 웃음. 나를 사랑해주세요. 아주 많이 사랑해주세요 라는 듯한 미소)이 인상적이었다. 예민하고 섬세한 아동들에게서 나는 냄새라고 할까. 세탁소에서 꼬마를 마주치면 나는 반갑게 인사를 하고 꼬마와 함께 왔던 길을 다시 간다. 처음에는 함께 오르기만 했던 언덕을 꼬마가 등에 멘 가방 손잡이를 들어주며 걷게 되었다. 어마어마하게 무겁다. 지리산 등반으로 3박4일치를 짊어진 것과 같은 무게였다. 꼬마가 지각인데도 뛰지 못했던 이유를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방과후 꼬마는 엄마가 퇴근해서 집으로 올 때까지 피아노로 주산으로 학원을 돌아야하기에 책가방엔 주판이랑 암산책, 주산책, 악보집이 들어있을 것이었다.
꼬마는 말이 없다. 어른의 친절에도 주의하라는 교육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왔던 길을 다시 가는 어른을 경계하는 눈치였다. 그러던 어느날 꼬마가 묻는다.
"진우는 아빠가 없나요?"
매우 민감한 질문이다. 우리집 아이의 신상에 관한 것이라 망설여진다. 그렇지만 솔직해지기로 했다.
"그래.. 진우는 아빠가 안 계신단다. 그런데 비밀로 해줄래?"
"예."
어떻게 알았는지 묻지 않았다. 솔직한 편이 진우에게나 진우 친구가 될 삼이에게나 편할테니까. 삼이의 질문을 보면 삼이가 보이기 때문이었다.
그날부터 어린 삼이는 나의 길동무가 되어 궁금한 것들을 묻기 시작했다.
“저희 누나는 무서워요. 등짝 스매싱을 날려요. 그런데 스매싱이 뭐예요?”
"저희 아빠는 돈을 못 벌어요.”
“엄마는 돈을 아주 좋아해요."
“금요일 저녁에 아빠가 데리러 와요. 아빠 차를 타고 고모댁에 가면 동생들이 있어서 같이 게임을 해요.”
삼이의 이야기에 틈이 생기면 나는 가끔씩 덧붙였다.
“누나는 엄마가 없을 때 널 돌봐야 하는데 네가 놀이터에서 놀고 집에 안 와서 걱정이 되어서 그런거야. 누나도 놀고 싶은데 너만 따라다닐 수도 없잖아. 누나도 어린이인데 말이지...”
“나도 돈을 좋아해. 엄마들은 다 돈을 좋아하지. 돈이 있어야 삼이 학원비도 내고, 맛있는 젤리랑 오렌지도 사주고 그러지.”
어느 날부터인가 삼이는 진우가 태권도에 가고 없는 빈집에 놀러오기 시작했다. 딩동, 벨이 울려서 나가보면 맑은 눈으로 나를 빤히 보면서 말했다.
“그런데 진우 엄마, 저 진우가 태권도에서 올 때까지 기다려도 돼요?”
“그래. 그러렴. 난 피곤해서 작은 방에서 쉬고 있을 테니까 넌 만화영화 보고 있을래?”
“예. 그런데 진우 엄마. 저 이거 먹어도 돼요?”
나는 잠깐 망설인다. 진우가 먹고 싶어서 샀던 젤리를 그대로 책상 위에 두고 갔기 때문이다.
“어쩌지. 그건 진우거라서.. 대신 다른 간식을 줘도 되니?”
“예.”
삼이에게 냉장고에 있는 사과와 키위를 잘라서 접시에 주자 정말 맛있게 먹는다. 그 전에는 물을 청해서 물잔을 건넸더니 삼이는 물을 마시다가 생각이 났다는 듯이 이렇게 말했다.
“오늘 물을 처음 마시는 거예요.”
학교에서는 코로나 때문에 음용수를 금지시킬 때였다. 오늘 처음이라는 건 아침식사 이후를 말하는 것일까?
“정말 오늘 처음 마시는 거야?”
내 눈이 동그래지자 잠시 생각하던 삼이가 배시시 웃으며 정정한다.
“아니요. 주산학원에서 마셨어요.”
아, 나는 또. 그제서야 안심한다.
밖에서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삐삐 들리고 현관문이 활짝 열린다.
“친구야, 내가 보고 싶어서 왔어?” 태권도로 볼이 빨갛게 상기된 채 진우가 외친다.
“진우야~” 삼이가 진우를 반긴다.
둘은 너무나 반가워한다. 더운 여름이었고 진우는 옷을 훌훌 벗고 샤워를 하러 들어갔다. 베란다에서 물총 2개가 있어서 삼이에게도 진우와 물놀이겸 샤워를 하라고 권했다.
조금 후 욕실에서는 꺄악대는 아이들 비명소리, 웃음소리가 들렸고 벗어놓은 아이들 옷을 정리하고 삼이 엄마에게 문자를 보낸다.
‘삼이를 오늘 저녁식사에 초대했는데 저녁을 먹여서 보내도 될까요?’
한참 후에 삼이 엄마로부터 문자가 왔다.
‘너무 감사합니다.’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삼이와 진우는 탁자에 젓가락과 수저를 놓고, 물컵을 놓으며 돕는다. 아이들이 만화영화를 보면서 저녁을 먹는 동안 나는 냉장고에서 시원한 캔맥주 하나를 딴다. 이제 그들에게는 단짝친구가 생긴 것이다. 내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친구. 부끄러운 이야기도 나눌 수 있고, 자신 없을 때 용기의 말을 해줄 수 있는 친구. 때로는 서로의 상처를 보면서 자신의 상처는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자연 치유도 경험할 것이다. 이윽고 삼이 엄마가 숨을 헉헉 쉬며 일터에서 달려와 삼이를 데리러 왔다.
아쉬운 작별의 시간. 내일 아침이면 학교에서 또 만날텐데도 아이들은 이대로 헤어지기가 너무 아쉽다.
“진우야, 나는 너랑 헤어지는 게 너무너무 싫다아~”
삼이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말한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문이 열리자 잠옷바람에 나온 진우가 멀리 있는 친구에게 외치듯 ‘삼아~ 삼아~’한다.
아이들 심장에는 이별의 지문이 꾹꾹 눌려져 있다. 이들은 이전에도 이런 체험을 했던 것이다. 이별이 무엇인지 아는 아이들. 한번쯤 이별을 경험했던 아이들. 이별 후에는 이전으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었다.
photo by lambb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