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책 읽니?”
친구의 조별 모임이 끝나길 기다리면서 단실 한 귀퉁이에서 책을 읽던 내게 한 사나이가 다가와 앉았다. 낯선 사람의 질문에 말없이 책표지를 보여줬다.
“평소에 이런 사회적인 책을 읽니?”
그 한마디 말에 나는 사회적인 책을 읽는 아이가 되었다.
그 사나이는 벽에 기대어 있는 기타를 들고 전주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알면 함께 부르자고 했다. 각 학교의 스카웃 친구들이 이제 막 조별로 모여 3박 4일 일정에 맞게 필요한 물건 담당을 정하고 있는지라 넓은 단실 안은 어수선하고 시끄러웠다.
우리는 말 안하고 살 수가 없나
날으는 솔개처럼
소리없이 날아가는 하늘 속에
마음은 가득 차고
푸른 하늘 높이 구름 속에 살아와
수많은 질문과 대답 속에
지쳐버린 나의 부리여
스치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어느덧 내게 다가와
헤아릴 수 없는 얘기 속에
나도 우리가 됐소
바로 그때 나를 보면서 날아가버린
나의 솔개여
수많은 관계와 관계 속에 잃어버린
나의 얼굴아
나는 우물우물 기타에 맞추어 그 시절 유행이었던 이태원의 ‘솔개’를 따라 불렀다. 마침내 인솔자인 2학년 선배가 와서 우리는 각자 집으로 흩어졌다. 그것이 고등학교 첫 여름방학의 시작이었다. 여름방학의 시작과 동시에 마치 고등학교 3년 내내 미아리 단실에서 3박 4일 야영에 쓸 준비물과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것이 학생의 본분을 다하는 것처럼 생각되기까지 했다. 이유는 모르지만 책읽기에도 박차를 가했다.
친구들 이름은 떠오르지 않아도 그들이 읽고 있던 책은 기억난다. 누구는 카뮈를 읽고 있었고, 누구는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고 있었고 또 어떤 친구는 모든 책을 다 읽고 심드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내 손에 들려 있었던 도스또예프스끼의 <가난한 사람들>을 보고 관심을 가졌던 사나이는 나중에 1기 선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소문에 의하면 그는 철학과를 중퇴했다고 한다. 영식 선배는 따르는 후배들이 많았다. 그가 어디에서 어떻게 용돈을 버는지는 모르지만, 후배들 밥을 종종 사주고는 했다. 진지하게 고민을 들어주었고 늘 같이 다니는 3기 선배들은 장학금을 받으면 영식 선배에게 밥을 사러오고는 했다.
나는 그를 통해 솔제니친의 <이반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를,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을 선물로 받아 읽었고, 잡지 『말』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흐른 후에 그로부터 들은 한마디 말에 나는 그 어른을 다시 보게 되었다.
“나는 모든 야영을 할 때 바라는 건 딱 한가지였어. 모두 안전하게 야영을 마칠 수 있게 해달라고.”
그 말을 듣자 잊었던 첫 야영지에서의 불편한 잠이 생각났다. 텐트에서의 불편한 잠을 견딜 수 없어 새벽에 깨었었다. 여학생들이 조별로 잤던 텐트였고, 그 텐트의 지퍼를 열고 나오자 영식 선배는 탠트 앞에 침낭을 깔고 노숙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자신의 일은 자신이 해결하는 걸스카웃이었다. 갓 고등학생이 되었던 내가 노숙을 하며 텐트 앞을 지켜야했던 선배의 마음을 헤아릴 리가 없었다. 새들이 일제히 날아오르는 신비한 숲속에서의 새벽에 요의를 느끼고 텐트 문을 여니 영식선배가 침낭에서 얼굴만 내놓은 채 잠들어 있는 걸 한참 관찰했었다. 반쯤 입을 벌리고 수난에 빠진 예수의 광대뼈가 보이고 푸석푸석한 머리칼을 한 채 곤히 잠든 모습. 깨우고 싶지 않아서 살금살금 운동화를 찾아 신었던 기억이 난다.
야영지에서는 스스로 자립하여 하루를 경영하도록 지도했다. 야영지를 위해 답사를 가고, 요리하고 먹고 설거지하는 동안 음악이 있었고, 지도를 보며 마을 탐색이 있었고, 장기자랑이 있었고 종교활동이 있었고 밤사이 비가 와도 텐트에 물이 차지 않게 영지를 손질하는 법을 진지하게 배웠다. 모두 선배들에게 배운 것이었다. 내가 11기라면 10기가 9기에게서 배운 지혜를 나누어주는 방식이었다. 어느 정도의 식량을 가지면 3일을 살 수 있는지도 알게 되었다. 훗날 극한의 삶을 살게 될지라도 미리 배워두면 끝내 견뎌내리라는 암시를 그때는 받지 못했다.
나도 이제 그날의 영식 선배의 나이 보다 훨씬 나이들었기에 그가 야영 내내 우리들이 ‘안전’하기만을 빌었다는 것에 동감한다. 인생 항해를 안전하게 마칠 수 있도록 나는 이 밤을 밝히고 있으니까.
나를 기대해준 첫 번째 어른이 영식선배였다면, 선배는 내가 존경하고 믿었던 첫 번째 어른이었다. 그가 꿈꾸었던 공동체 실현이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내 일상에 마을은, 노인들은, 어린이들은, 공공의 것들은 모두 영식선배의 영혼이 깃들어 있다. 마침내.
photo by lambb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