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단편 소설

다이조부

by 이은주

다이조부

태국에서 온 톰은 월급의 일부를 자신의 왕에게 매달 송금하고 있었다.
아티스트의 녹음실이 밀집해 있던 메구로역 근처 야키니쿠를 파는 조조엔에 면접을 보러 갔을 때 처음 톰을 보았다. 종이 한 장이 서 있는 것처럼 마른 그가 플라스틱 컵을 접시돌리기 묘기를 하듯이 높이 포개들고 주방을 이동하는 동안 나는 점장과 서서 몇 마디 나누고 다음 날부터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톰은 주방의 비좁은 공간을 아주 쾌적하게 이동하면서 내게 느끼하게 눈웃음을 짓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아직 어른이 되지 않은 어린이의 모습이랄까 아무튼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고 낯설었다. 물론 친구가 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점장은 근속 십여 년의 능숙한 관리자로서 아르바이트생에게 공평했다. 중국인이든, 태국인이든, 한국인이든, 혹은 불법취업에 해당하든 늘 의견을 물었고, 명령하지 않고 제안했다. 점장의 부드러운 몸짓 언어에 따라 홀 내에서 우리들은 빨간구두를 신은 무희들처럼 테이블 구석구석을 돌았고 빈 접시를 쉬지 않고 주방으로 날랐고 추가 주문을 받았으며 주방장이 단골손님에게 내는 서비스를 또박또박 전달했다. 점장은 내가 만난 리더 중에서 가장 멋진 모델이었다. 그가 내 짧은 머리에 간섭만 하지 않았으면 아마도 존경까지 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직원 회식이 있을 때 나는 가지 않았다. 숙제도 해야 하고 밀린 빨래도 해야 하고 잠도 자야겠기에 쉬는 날까지 외출을 하고 싶지 않았다. 목욕탕이 없는 다다미 방을 세들어 사는 나는 코인샤워기와 목욕탕을 사용했지만 여차하면 머리는 하루에 두 번도 감는터라 늘 짧은 커트머리를 선호했다. 그것이 문제였다. 뒤에서 보면 남자같았다. 아니 앞에서 보아도 남자같았다. 마른 내 몸에 조조엔의 자주색 조끼와 스커트는 어울리지 않았다. 게다가 스타킹까지.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톰이 입었던 자주색 바지가 탐이 났다. 그런 내 마음도 몰라주고 점장이 손님이 없는 한가한 틈을 타서 제안을 했다.

“이상 지난번 회식 때 안 왔지? 그때 이상의 몫으로 돈이 조금 남았는데 소노상, 소노상이 다니는 미용실이 어디죠?”
“역 근처요.”
“이상을 조금 여성답게 파마라도 해주면 어떨까 하는데..”
나와 같은 자주색 스커트에 조끼을 입고 흰 셔츠는 팔뚝까지 걷어 올린 재일교포아줌마는 아주 신이 나서 점장의 말에 장단을 맞추고 자신이 여자라고 주장하는 퐁짱은(그도 태국 친구다) 입을 쭈볏거리며 질투를 하듯 팔짱을 끼고 엿듣고 있으며 그 사이를 특유의 느린 동작으로 이리저리 뚫고 지나가며 제 할 일을 하는 톰도 빙글빙글 웃고, 아주 나를 사이에 두고들 지루한 시간을 홈시탐탐 즐기고 있었다.

이렇게 하여 나는 거칠고 자기 주장이 강한 제일교포 아줌마 소노씨의 단골미용실에 이끌려 회식비 일부를 파마하는데 쓰고 왔다. 점장의 배려로 소노씨와 나는 쉬는 날을 맞추어서 미용실에 가서 최신 유행의, 소노씨에 의하면 아주 멋진 스타일로 파마를 하고 왔는데 문제는 안경이었다. 서비스업에서 안경 쓴 여자는 렌즈를 이용하거나 벗게 되어 있어지만 나는 렌즈도 안 맞고, 시력도 나빠서 안경을 쓰고 일을 했다. 파마를 하고 검은테 안경을 쓴 내가 조조엔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톰과 퐁짱이 호들갑스럽게 내 주변에 몰려왔고, 계산대에서 잔돈을 세던 점장도 손님이 우리가 보이지 않는 주방으로 가서 소노상의 손짓몸짓과 함께 내 야쿠자 파마를 감상하고들 있었다. 에휴, 회식을 갈 걸 그랬다. 이 머리를 하고 어떻게 학교를 갈까.

학교에서 친구들은 아무 말 안 했지만, 거울 속의 나는 김정일 동지같았다. 더 이상해졌다. 벌거벗은 임금님처럼 조조엔에서는 아무도 나에게 머리가 이상하다고 하지 않았지만, 나는 퐁짱이 더 이상 점장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이상에 대해서 질투를 하지 않는 걸 보고 알 수 있었다. 점장에게는 사랑하는 한국인 아내가 있었는데 외로운 아내를 위해 아니 외로울 유학생들을 위해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여 밥을 먹인 일이 있었다. 나는 그제서야 점장이 왜 그토록 우리들에게 다정했는지 알게 되었다. 다정한 사람은 이유없이 사람들에게 다정한 거였다. 이유를 달면 다정해질 수 없으니까.

톰도 마찬가지였다. 빈 접시를 걷어오거나 서툴고 어정쩡하게 빈 생맥주통을 교체할 때면 바쁘지 않는 한 다가와서 도와주다 갔다. 내가 미안해 하면 ‘다이조부’ 하고 태국인 특유의 둥근 눈을 꿈벅꿈벅 하며 괜찮다고 했다. 집에서 들려오는 어두운 소식이 마침내 엄마의 도산과 엄마의 쓰러짐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날 닦고 있던 유리잔이 떨어지는 걸 잡다 손가락 사이로 날카로운 유리조각을 받았던 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근심에 찬 조조엔 식구들이 내 주변에 모여들어 뺨을 두드리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면 쪼르르 달려가서 점장에게 일러바치던 퐁짱도 마찬가지였다. 그때가 언제였을까. 나는 학교를 그만두고 서울로 돌아가야겠다고 톰에게 말했던 것 같다. 더 이상 등록금 연기를 할 수가 없어서이기도 했다. 톰은 자신에게 10만 엔 정도의 여유가 있다며 그 다음날 가지고 와서 빌려주었다. 톰과 나의 이야기의 끝은 이랬다. 나는 아르바이트비를 받은 날 5만 엔을 갚고 다음 달에 갚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새벽까지 일을 하고 쪽잠을 자고 학교 수업에 가려던 내게 전화 한 통이 온다. 톰이었다. 자신이 살던 아파트에서(톰과 같이 이주노동자들은 방 한칸을 빌리는 것도 자유롭지 않아서 대부분 모여서 산다.) 어떤 사람이 신고를 해서 갑자기 태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고. 지금은 비행기표를 사서 돌아가는 날까지 붙잡혀있다고. 나는 내 존재를 증명해야 했다. 빌린 돈은 갚아야 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아, 톰 거기가 어디야? 지금, 지금 내가 갈게. 나한테 2만엔이 있어. 가서 전해줄게.”
“다이조부.”
톰은 괜찮다고 했지만, 나는 괜찮지 않았다. 물어물어 톰에게 갔다. 그곳은 낯선 곳. 마치 죄수들을 가두는 곳 같아 나는 긴장했다. 면회 신청을 하고 봉투에 넣은 돈을 창살 사이로 건네주며 “톰, 이게 내 한국 전화번호야. 졸업을 하게 되면 서울로 돌아갈 거야. 우리 다시 만나자.”
톰은 미소짓고 있었고 차라리 잘 되었다는 듯이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자신 스스로 갈 수 없었는데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고 할까. 지쳐보였고, 고향이 그리워보였다.
서울로 돌아와서 나는 단 한 번 톰의 국제전화를 받았다.
“운주!”
“우와, 톰!”

그 다음 말은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톰은 필요에 의해 배웠던 일본어를 무서운 속도로 잊고 있었다. 아쉽게도 나는 톰의 진짜 이름을 모른다. 가르쳐주었다고 해도 태국어로 발음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나에겐 톰이 준 태국어 기초가 있다. ‘친라터’라는 노래 테이프도 있다. 그가 월급의 일부를 매달 자신의 국왕에게 보냈던 국왕 초상화가 든 우표도 있다. 톰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아름답게 쓴 태국어도 있다.
손님이 없는 한가한 시간에 톰은 앞을 보고 말한 적이 있다.
“운주, 우리 결혼하자. 고향에 가면 난 트럭이 두 대나 있어. 오토바이를 타고 해변에 가서 하루종일 놀다 바나나 따 먹고 그리고 돌아오자.”
(그때까지 톰이 결혼하자고 고백한 친구를 나는 두엇 알고 있다. 낮에는 극단에서, 밤에는 조조엔에서 알바를 하는 고바야시에게는 금목걸이도 선물한 적이 있다.) 톰은 그때만큼은 진실하게 고백을 하는 버릇이 있다.
톰, 듣고 있니? 네가 사는 나라에 꼭 한 번 가보고 싶어. 그리고 네 이름도 정확히 발음하고 싶어. 이젠 나머지 3만 엔도 갚을 수 있는데. 넌 정말 멋진 친구였다. 그리고 네 오토바이 뒤에도 타보고 싶었어. 하루종일 아무것도 안 하는 기분은 도대체 어떤 기분일까? 나도 너처럼 아무 때나 아무에게나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photo by lamb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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