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은 진우엄마가 안 불쌍하니? 어려서 엄마없이 자라서 인간관계에 서툴러 매번 남자친구랑 헤어지는 진우엄마가 안 불쌍해? 난 불쌍한데. 사랑 한번 잘못해서 아이 낳고 그 책임을 혼자 다 짊어지고 있는 진우엄마한테 잘 해줘.”
군입대 전에 아버지와 인사차 들른 진우 삼촌과, 진우 할아버지의 저녁상을 물리면서 제가 한 말이었습니다. 마침 진우엄마가 진우를 데리고 미용실에 가고 없는 틈을 타서 속이야기를 꺼냈지요. 평소에는 다 큰 진우 귀에 들어갈까봐 삼켰던 말이었어요. 대학생인 진우 삼촌에게 누나는 엄마 같은 존재였을 텐데 갑자기 진우가 태어나자 혼란스러웠을 거예요. 그 전까지는 사이좋은 남매였지요. 순한 친구들이라 크게 싸움 한번 안 하고 자랐어요. 그런데 진우가 예고없이 태어나자 누나와는 대화다운 대화를 나누는 걸 본적이 없군요. 무시하는 태도라고 할지, 간신히 필요한 말만 응대하는 정도였어요.
진우를 대할 때도 혼란스러워보였지요. 다정하고 상냥하기는 했는데 삼촌으로서 책임감을 갖고 진우를 대하기 때문인지 자연스러워보이지 않았어요. 가능하면 가족과 있는 시간을 빨리 벗어나고 싶어하는 모습이었지요. 저는 그런 진우 삼촌의 마음을 알 것 같았어요. 그러나 어른으로서 중재는 해야겠기에 군입대 전에 제 생각을 전했어요. 누나에 대해 이해하려들지 말고 그 자체를 인정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말이지요.
진우 할아버지, 즉 제 남동생은 딸인 진우 엄마를 아버지로서 아끼기는 하는데 가끔 비난의 말투를 사용하는 걸 들을 수 있었어요. 마치 모든 게 진우 엄마 잘못이라는 듯이, 양육의 모든 책임을 진 진우 엄마가 제대로 엄마노릇을 못하고 있다는 투였지요. 왜 그런 마음 아시지요? 저는 욕하고 야단을 쳐도 다른 사람이 진우 엄마를 비난하는 건 참을 수 없는 기분말이에요.
이 편지는 저를 위한 것입니다. 당신의 글을 읽고 자다가 일어나서 쓰고 있는 거예요. 저는 설거지를 하다 잊고 싶지만 잊히지 않는 몇몇 에피소드를 떠올리고는 해요. 어느 날 갑자기 집을 나가서 안 들어온 진우 할머니와 진우 엄마 대신 진우를 어린이집에서 데리고 올 때 이야기를 했었지요? 저는 진짜 그들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어요. 그들의 생의 한가운데에서 그만 떠나고 싶었지요. 아니, 예전에 떠났어야 하는데 떠날 기회를 놓쳤다고 할까요? 엄마는 늘 자신의 감정으로 사람을 좌지우지 해왔지요. 저는 그 감정의 노예가 되어서 모든 뒤처리를 대신하는 세월을 살아왔어요. 엄마를 미워하면서 살 수는 없었어요. 그래서 죽고 싶었지요. 남동생을 미워하면서 살 수는 없었어요. 그것은 마치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거든요. 살아도 살아있는 게 아닌 삶. 저는 그래서 심리학 책을 뒤지다 스캇 펙의 <거짓의 사람들>을 읽고 나이 서른에 엄마를 악인으로 분류해놓고 더이상 유서를 쓰지 않게 되었어요.
엄마를 죽일 수 없으니까 죽으려 했던 것을 멈추었어요. 그 증오는 어디에서 나오는걸까요? 어쩌면 이 감정도 대물림일지도 모릅니다. 타인을 돌보는 행동의 기준이 매우 높은 건 증오의 뿌리 깊음에서 오는지도 몰라요. 그래요. 이런 자부심이 있지요. ‘이것 봐. 나는 미워하면서도 이 정도의 돌봄을 할 수 있어’ 하고요. 왜곡되고 일그러진 내면의 거울은 양면성을 가져서 떼어낼 수 없답니다. 이 상처를 치료하고 달랠 수 있는 건 오직 사랑뿐. 답은 사랑인데 찾아가는 과정이 정말 죽도록 사납습니다.
‘악한 사람은 동정의 대상이어야 하지 미움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글이 있더군요. 그렇다고 엄마의 악함을 낱낱이 표현할 수는 없어요. 엄마가 살던 세계. 여성으로서 부당하게 겪었던 차별과 어린시절의 전쟁 경험과 가난, 부족한 표현력, 실제 세계와 상상의 세계를 뒤바꾸길 좋아하는 엄마를 보면서 저는 외롭게 자랐던 것 같아요. 엄마는 자신을 돌보는데도 벅차보였거든요. 누구라도 그렇겠지만, 저 또한 어른의 세계가 보이는 아이여서 사는 게 벅찼던 아이였어요.
운동화 끈을 묶으며 다시는 돌아오지 말아야지 다짐하고는 했던 집으로 돌아오는 기분. 어떻게 엄마와 사이가 벌어졌을까. 처음부터 이러진 않았는데 사랑은 변하는가 봅니다.
오늘 전 에셔의 도마뱀 그림을 보면서 엄마의 아버지가 8형제 중 제일 기대했던 엄마를 혼내실 때 왜 혁대로 때리셨고, 벌거벗겨 문밖으로 내쫓으셨는지를 곰곰이 따져봅니다. 예민하고 뛰어난 능력을 가진 소녀가 자신의 아버지에게 학대당한 기억 이전에 할아버지 또한 장손이 아니라는 이유로 지게를 지고 농사를 지어야했던 소년이었고, 그 소년은 마침내 지게에 교복을 감추고 몇 십리를 걸어 학교에 다녀 서울에 있는 직장에 취직하게 된 성공담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도마뱀의 꼬리처럼 잘라내도 다시 자라나는 이 무슨 가혹한 가족사인지 모르지만, 설거지를 하면서 진우 엄마만큼은 도마뱀의 꼬리에서 잘 도망쳐주길 간절히 바라는 것입니다. 다른 꼬리들은 제 손으로 꽉 잡고 있을 테니까 말이지요. <거짓의 사람들> 반대편에 서기 위해 애쓴 끝에 저는 오늘도 너무 많은 고백을 해버렸군요. 오늘 밤 글쓰기는 여기에서 마치겠어요. 너무나 피로하고 너무나 수다스러워서 아침이 오면 후회할 편지를 보낼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