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단편 소설

준비된 가족3

by 이은주

3.

세종문화회관 뒷골목 지하 빌딩에 자주 가는 횟집이 있어서 그곳으로 예약을 잡았다. 아홉 살 현오에서 청년이 된 현오와 재회할 줄 생각도 못했다. 가끔 밤낚시를 하다 한기를 느끼면 텐트에서 잠바를 가져오다 현오 생각이 난 것도 사실이다. 조카들이 초등학교 졸업을 하거나 중학교 입학을 할 때도 문득 현오 생각이 났지만, 연락도 없다가 특별한 날 선물만 보내는 것도 어색해서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아홉 살 현오는 종종 철야 작업하는 나에게 카톡으로 대화를 했다. ‘뭐 하세요? 감독님. 심심해요. 고스트워해요.’

현오가 좋아하는 게임을 한동안 같이 했다. 서로 다른 공간에 있어도 현오는 게임을 할 동안 나와 함께 있는 것처럼 느끼고 기뻐했다. 게임을 하면서 대화할 때 현오는 나에게 안기지 못하고 긴장해 있던 현오가 아니었다. 서로 힘을 합쳐 불의와 싸우고 적을 물리치고 함께 기뻐하는 것이었다.

그런 현오를 만나면 만날수록 나는 책임감을 느꼈다. 아이에게 잘 보이고 싶은 욕구랄까. 내 안의 인정욕구가 이렇게 발휘되고 있다니 나는 현오에게 멋진 감독님이 되고 싶었다.


오래간만에 만난 현오에게 무언가 선물을 하고 싶었지만, 선물보다는 용돈이 낫겠다 싶어서 세종문화회관 골목에 있는 ATM에서 30만 원을 찾았다. 그리고 약속 장소의 계단을 내려가면서 나는 바보처럼 현오를 만나면 너에게 나는 어떤 어른이었느냐고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가정을 가지기 두려웠다. 현오가 혹시 그런 내 마음을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 궁금해졌다. 아빠가 화를 자주 내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라면 한번쯤 자신의 피를 의심할 것이다. 나도 결혼을 해서 아이가 생기면 그럴 것 같았다. 아이에게 잘할 자신이 없었다. 조금이라도 아이에게 손을 댈까봐 있지도 않은 아이에게 미안한 심정이 되어본 사람이라면 이런 내 마음을 이해할 것이다. 감추고 감추었던 마음을 아홉 살 현오에게만은 감출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날 밤 내가 번쩍 안아올렸을 때 현오는 긴장해 있던 것이 아니라 나를 믿고 의지하기 어려웠던 게 아니었을까. 아이는 의외로 어른들이 감추고 싶은 부분을 직시할 때가 있다. 맑은 눈으로 하염없이 나를 바라보는 눈을 처음에는 아무 생각없이 바라보다가 마음을 통째로 읽히는 것 같아서 현오의 시선을 피하고는 했었다.

가게 안은 조용했다. 약속 시간 보다 조금 이르게 도착했기에 가게 주인에게 봉투를 한 장 얻어서 현오에게 줄 용돈을 넣었다. 현오가 올 때까지 앉아서 현오에게 줄 용돈 봉투에 몇 자 적고 있는데 현오가 방으로 들어왔다. 그때까지 조용했던 실내에 음악이 흘러나왔다.

photo by bal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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