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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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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주 Jun 11. 2021

준비된 가족4

4.

현오가 들어와서 마주앉자 전복죽이 나왔다. 고소한 참기름 냄새는 그리운 감정을 불러온다.

“어서 먹으렴.”

“네.”

현오가 한쪽 벽면을 장식한 대나무 정원에 눈을 주며 대답했다.

“이 방은 예전에 한번 와본 것 같아요.”

“그랬나? 내가 현오를 이곳에 데리고 온 적이 있었나?”

“네. 예전에는 대나무 정원이 있던 곳에 크고 작은 항아리와 꽃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어, 그랬지. 그렇다면 내가 현오와 한번 와봤다는 소리인데 통 생각이 안 나네.”

“제가 회를 안 먹는다고 하니까 광어며 우럭을 한 개씩만 맛보게 하셨어요. 그리고 낚시도 데리고 가셨어요.”

“맞다. 그래 생각난다. 네가 바다에서 나는 음식은 싫어하고 땅에서 나는 음식만 먹는다고 해서 내가 웃었지 아마? 그래서 낚시하러 가서 고기잡는 법도 가르쳐주었고.”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처음 본 그날을 저는 지금도 잊을 수 없어요. ”

“그래. 옛날 생각하고 많이 먹어. 이젠 회 먹을 줄 알지?”

“네.”

“술도 한잔 받아라.”

현오가 술잔을 두 손으로 받고서 단숨에 마시는 걸 보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현오는 요즘 뭐하니?”

현오는 할말이 아주 많은 얼굴이었다가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머뭇거리다가 결심했다는 듯이 천천히 대답을 한다.

“시민단체에서 일하고 있어요.”

내가 대답이 없자 현오가 말을 이었다.

“양육비 해결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면서 시나리오를 쓰고 있어요. 영화제에 출품하려구요.”

“그래? 아주 멋진데. 내가 도울 일은 없니?”

“정말요? 양육비 미지급자를 성범죄자처럼 각 구역마다 신상공개하자는 청원에 서명해주시겠어요?”

나는 술을 마시다 말고 핸드폰을 꺼내 현오가 가르쳐준대로 청원에 서명을 하고 다시 대화를 시작했다.

“시민단체에서 일하면서 시나리오까지 쓰려면 시간을 쪼개 써야겠구나.”

“그렇지도 않아요. 단체에서 일하며 느끼고 생각한 것이 시나리오 작업에 도움이 되니까요.”

“야, 그나저나 현오가 시나리오를 쓴다니까 읽어보고 싶은데.”

“감독님이 읽어주시면 저야 좋지요.”

현오는 12년 전처럼 꼬박꼬박 나를 감독님이라고 불러주었다. 현오가 커서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니 접었던 영화에 대한 내 꿈이 생각나 술이 잘 넘어갔다. 나는 취했다. 그리고 현오와 닮은 현오 엄마 생각도 다. 나와 인연은 없었어도 잠시 동안만이라도 따스한 가정을 느끼게 해주었던 사람. 혼자서도 아이를 잘 키운 사람. 눈앞의 현오가 대견해서 나는 작은 일에도 너털웃음을 자주 웃었다.


그날 밤은 취했다. 현오도 취하고 나도 취하고. 현오는 웃으며 물었다.

“제가 저희 아빠를 양육비 미지급자로 신상공개를 하는 상상을 하면 뭐랄까 가위에 눌리는 것처럼 두려워져요. 그래도 해야겠지요?”

고개를 숙인 현오의 속눈썹이 가볍게 떨렸다. 어른이 된 현오가 판단하고 행동할 일이지만, 어른도 때로는 동료가 곁에서 지원해주고 격려해줄 때 힘이 더 나는 법이다.


“현오야, 내가 잘은 모르지만 너에게 그렇다고 말해주려고 그날 버스에서 널 만났나보다. 아버지가 자식에게 사랑을 주는 것도 당연하고, 자식을 먹이고 입히는 것도 당연한데 그 책임을 다 하지 않을 경우에는 이제라도 당당하게 네 권리를 찾는 건 당연해. 경제적인 자원은 삶의 질이나 건강과 정서에도 영향을 미치니까.”

현오는 술 취한 내 말을 하나하나 새기듯이 내 눈을 바라보았다. 그때 내 눈에는 아홉 살 현오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현오 지금 우는거니. 우는구나.

photo by lamb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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