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집에 돌아와도 현오의 <준비된 가족>이 준 여운이 남아서 책장 앞에서 시간을 보내며 이 책 저 책을 꺼내보았다. 그러다가 아예 책장에 기대고 앉아서 사진집이나 화집을 보는 동안 영화 기자 시사회에서 받았던 팸플릿까지 하나하나 넘겨보게 되었다.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와 <박하사탕>, <오아시스> 팸플릿에는 시사회 날짜와 간단한 감상이 포스트잇에 적혀있었다. 어림잡아 팸플릿만 한 박스 정도 나올 것 같았다. 나는 창고에서 재활용쓰레기로 버릴 박스 하나를 가져와 그것을 다 담았다.
현오에게 줄 작정으로 박스 테이프를 가지러 일어서려는데 책장 가운데에 <타르코프스키의 순교일기>가 눈에 띄었다. 그 책도 함께 넣었다. 타르코프스키의 일기는 그 자체로 문학이고 철학이며 활자화된 영화였다. 일기가 곧 시나리오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영감을 준다고 할까. 그는 머릿속으로 영화를 찍지 않는 날이 하루도 없을 것처럼 영화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고 끝을 맺었다. 현오의 젊음이 아직 간절함이 무엇인지 모른다해도 곁에 두고 읽다보면 언젠가는 도움이 될지도 몰랐다. 박스 테이프로 영화 팸플릿을 봉인하자 의외로 개운한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언제까지나 이별을 끌고 있는 연인처럼 애매한 관계에 선을 그은 느낌이었다. 이젠 현오를 어떻게 도울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야했다. 어린 현오를 믿게 만들고, 따르게 만든 후 아무 설명도 없이 사라진 12년 전의 나는 현오에게 빚을 진 기분이다. 그 빚을 갚지 않으면 안 된다. 아무리 현오 엄마와의 관계가 틀어졌다고 해도 현오에게 만큼은 특별한 관심을 기울일 수도 있었는데 옹졸한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라디오에서는 <아빠와 크레파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노래가사를 가만히 따라 부르던 내 손등 위로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어렸을 때 불안한 저녁시간이면 나는 구석에서 아빠의 화가 풀리기만을 기다렸다. 사춘기 때는 그런 아빠에게 기 한 번 못펴고 사는 엄마 대신 싸우고 싶었었다. 성인이 되어서는 집을 나와서 결코 돌아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이 미웠다. 아직도 유년시절의 상처를 끌어안고 아파하는 날 인식하자 현오에게 나는 얼마나 나쁜 어른이었는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일은 거의 방치하다시피 내버려둔 캠코더의 먼지를 털고 이상이 없는지 테스트를 해야겠다. 이상이 없으면 현오에게 물려줄 것이다. 12년의 공백을 어쩔 수는 없지만, 앞으로는 현오의 멋진 감독님이 되어주어야지. 그리고 나도 현오의 단편영화 크레딧에 제작자로 이름을 얹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현오의 첫 영화에 투자자가 되어 잃었던 영화에의 꿈을 이루어야겠다. 12년의 공백 후 재탄생한 준비된 가족이 현오와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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