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감독님을 12년 만에 버스 안에서 만났다. 아빠를 만난 것보다 더 기뻤다. 엄마는 그해 여름 휴가를 서해 바닷가로 잡고 자동차 뒷좌석에 먹을 것을 잔뜩 싣고 달렸다. 우린 예약한 팬션에 짐을 풀고 해질녘 소나무숲을 걸었었다. 바닷가는 쓸쓸했고, 왜 나를 이곳에 데리고 왔는지 묻고 싶었지만 물을 수 없었다. 엄마의 옆얼굴이 창백했고 눈에는 커다랗게 쌍거풀이 생겨있었기 때문이었다. 엄마와 반보쯤 떨어져서 머리에 손가락 깍지를 끼고 뒤따랐다. 그날따라 엄마는 오래오래 소나무숲을 걸었다. 나는 감독님의 안부를 물었지만 엄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끝이었다. 어느 순간 카톡에서 감독님이 사라졌고, 엄마의 곁에서 사라졌고 나는 혼자가 되었다. 엄마는 복지관에서 여러 가지 기획을 세우고 그 기획이 호응을 얻을 때마다 점점 복잡한 업무처리로 늦게 귀가하는 일이 잦았다. 감독님은 어째서 카톡을 안 하시는지, 엄마와는 어째서 만나지 않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나는 새 친구를 사귀지 않으면 안 되었다. 밤늦게까지 영화를 봤다. 현관에서 엄마의 구두 벗는 소리가 나면 얼른 내 방 티브이를 껐지만 중학생이 되고는 엄마를 설득하여 엄마와 함께 영화관에 가는 일도 잦았다. 아들이 영화를 전공하고 싶다고 하니까 엄마는 그럼 어떤 영화 감독이 좋을까 하고 관심을 가져주었다. 감독님과 연락이 끊기고 나서 처음으로 나를 제대로 바라봐 준 느낌이었다. 그래서 더욱 영화가 좋았다.
엄마는 언제부터인가 친척들과 왕래를 하지 않았다. 명절 때 나만 보냈다. 나라도 명절 음식을 먹이고 싶었나보다. 친척들은 만나면 다정하게는 대해주시는데 필요 없는 말이 많았다. 그냥 사랑해주면 안 되나. 무슨 조건이 그렇게 많을까. 사춘기가 되자 나도 친척들을 찾아다니지 않게 되었다.
‘엄마 혼자 널 키우고 애쓰니까 나중에 꼭 효도해서 갚아야 한다.’
(무슨 빚인가요. 갚게?)
‘엄마 고생하니까 공부도 열심히 하고.’
(저도 알아요.)
그냥 오래간만에 봐서 반갑다, 키가 많이 컸구나, 무슨 음식 좋아하니? 요즘 영화를 좋아한다며 어떤 영화가 재미있더냐? 이런 질문을 받았다면 그렇게 불편하지는 않았을텐데 어른들은 마치 내가 아빠가 없어서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아이인 것처럼 대하고 있으니 그곳엘 더 이상 가고 싶지 않았다. 엄마에게 이런 사정을 이야기하니까 ‘그래도.’라고만 했지 강요하지는 않았다. 대신 명절이 아닌 다른 날에 외할머니를 만나고 오도록 했다. 사람들이 엄마 이야기를 하며 ‘효’를 강조할 때마다 나는 작은 죄인이요, 엄마의 인생을 방해하러 온 사람같았다. 엄마에게 나는 사랑받고 있는데도 그들은 마치 그것을 부정이라도 하려는 듯 엄마, 엄마, 엄마를 위해 내가 살아야하는 것을 강조했다. 그럼 나는 언제까지요? 언제까지 나는 엄마를 위해, 엄마의 헌신을 위해 감사해야 하는 겁니까? 당신들은 그래서 부모님께 얼마나 감사하며 살고 있는데요. 1년에 겨우 몇 번 용돈을 챙겨드리는 일이 효도하는 겁니까, 잘 먹고 잘 사는 걸 보여드리는 게 효도하는 겁니까. 그런 입바른 소리를 하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나는 불만이 생기는 걸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나야. 그런데 왜 엄마를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말들 하는거지.
나는 감독님이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고 일기에 썼다. 그때는 모든 일기가 영화 제목이거나 영화 대사를 딴 것이라서 지금 읽어보면 진짜 우습다. 영화를 100편째 본 날 일기에는 개봉영화와 앞으로 볼 영화를 써두어서 그날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감독님을 잃고 영화가 내게 왔다. 그런데 오늘 감독님이 다시 돌아왔다. 이럴 땐 영화 제목으로 뭐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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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je.on_call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