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단편 소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은주 Jun 14. 2021

준비된 가족 7

7.

현오가 회사 앞으로 시나리오를 들고 왔다. 현오는 월급을 받았다며 베트남 쌀국수 맛집으로 나를 안내했다. 조용한 구석에 자리를 잡은 우린 고수가 녹차빙수처럼 뿌려진 쌀국수를 국물도 남기지 않고 먹었다. 금요일 저녁이었고 자동차 뒷좌석에는 낚시도구가 실려 있었다. 나는 여행을 떠나려던 걸 현오에게 말을 할까 망설이다가 그만두었다. 현오가 원하는 건 낚시여행이 아니라 시나리오를 읽은 내 감상일 테니까.


시나리오 앞장에는 <준비된 가족>이라고 적혀있었다. 시나리오를 읽어 본 나는 현오에게 영화 콘티 작업은 했는지 물었다. 현오가 가방에서 꺼내준 노트 첫 장에는 배드파더들이 서있고 위에 형형색색의 드론이 떠다니고 있었다. 그들이 이동할 때마다 드론도 함께 머리 위를 날고 있었다. 화장실에 갈 때나 회의를 할 때 혹은 잠자리를 하고 있어도 드론은 머리 위를 날고 있었다.

“기발한데.”

“배드파더들 머리 위로 드론을 설치하는 건 성범죄자가 전자발찌를 차고 다니는 것과 같아요. 그리고 또 다른 해석을 한다면, 그 모든 일상을 걸고 육아를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이에요.”

“요즘은 장비 대여도 많으니까 못 찍을 것도 없지. 아니면 CG처리 하면 되겠네.”

“어떠세요?”

“이걸 다 혼자 썼다니 기발한데. 무거울 법한 장르를 웃음 코드로 잡고 공론화시키려는 의도도 좋고. 마지막에 배드파더들이 손을 들고 안 받겠다고 하는데도 살려달라며 양육비를 단체에 맡기러 오는 것도 재미있고..”

나의 칭찬에 현오는 빙긋 웃다가 침묵했다.

“감독님 전 앞으로 어떻게 살면 좋을까요?”

“응?”

“써놓고 보니 이 이야기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닌 것 같아요. 영화를 만들려면 제작자를 설득해서 투자를 하게 해야하는데 영화를 만들기도 전에 망한 기분이 들어요.”

“그래? 나 말고 다른 사람에게도 이 시나리오를 보여줘 봤니?”

“아니요?”

“그렇다면 내가 제안 하나할까? 내가 아는 선배가 영화학교에서 시나리오 작법을 가르치고 있는데 그곳에 등록해 볼 생각은 없니? 일단 영화를 사랑하는 공동체를 만나야 자극도 되고, 객관적인 품평도 받고, 앞으로의 방향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한 번 생각해볼게요.”

“생각하지 말고 행동해. 행동했다가 아니면 그때 멈추면 돼. 나도 현오 나이 때 영화에 대한 꿈을 꾸다가 이것저것 따지는 바람에 접었는데 지금 후회가 돼. 꼭 공부가 아니라도 사람은 그때밖에 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걸 나중에서야 알았어. ”

현오가 고개를 들고 미소지으며 정답을 알고 있다는 듯 말했다.

“사랑이요?”

photo by lambba

매거진의 이전글 준비된 가족6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