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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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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주 Jul 22. 2021

한낮의 와인


헤밍웨이는 전쟁 때 와인 한 병에 물을 타서 두 병으로 만들어 마셨다고 한다. 어제 도착한 택배는 현관에 방치된 채 하룻밤을 묵었다. 보내는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이었고 택배 회사에 전화를 걸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한낮이 되어서야 담당자로부터 송장번호로 보낸 사람을 확인하는 전화가 왔고, 그래서 당신은 물건을 반송하실 겁니까 하고 물었다.

그렇게 질문을 받으니 나는 잠시 망설이게 되었다. 아무리 수십 년 지기의 선물이지만 한꺼번에 받기에는 과한 와인 상자에 ‘똑똑’ 노크를 해본다. 전쟁도 아니고, 헤밍웨이도 아닌 내가 과연 이 와인 상자를 선물로 받아도 될까.하고.


오늘부터 시작된 여름방학은 코로나 4단계임에도 일을 하러 나가야 하는 나에게는 육아의 짐을 과중하게 했다. 빈 시간 사이사이를 학원으로 돌리는 마음도 편하지는 않았다. 매일매일 돌아오는 식사준비도 35도가 넘는 무더위에는 어쩐지 기운빠지는 일이다.

하긴 전쟁이라면 전쟁이지 육아 전쟁, 돌봄 전쟁.

와인을 보낸 친구는 아마 지금쯤 일을 하고 있어서 전화를 해도 받을 수 없겠지. 커터 칼을 들고 박스를 열자 개봉을 기다리는 와인 여섯 병이 고개를 내민다. 이때 전화가 울린다.

“부재중 전화가 와서요.”

“아, 택배회사인가요?”

“아니요. 와인가게인데요?”

“아, 그렇다면 어제 받은 와인 때문에 걸었나봐요.”

“보내신 분이 ○○○이시지요? 맛이 괜찮은 와인이 좋은 가격에 나와서 보내신 것 같아요.”

“아, 예 고맙습니다.”

운송장에 있던 연락처 두 곳에 전화를 했는데 그중 한곳이 와인 매장이었던 것이다. 서랍에서 와인따개를 꺼내서 뾰족한 끝으로 병 주변에 금을 긋는다. 코르크가 부드럽게 빠져나오도록. 술맛같은 건 잘 모른다. 단지 조상 대대로 알콜분해 속도가 빠른 장점을 타고 태어난 것 이외에는. 짧게 한모금 맛을 본다. 좋아하는 맛이다. 그러니까 포도주스처럼 단맛이 아닌 떫은 맛. 이 맛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어금니를 타고 샘솟는 신맛. 뇌를 자극하는 맛. 와인을 마시면서 이렇게 늙어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네. 새삼 붉은 잔에 시선을 준다. 와인을 보낸 친구의 슬픔이 술잔에 고여있는 것만 같다. 얼마 전에 친구의 부모님 집을 찾은 적이 있었다. 계획에 없었으나 나의 무의식은 요 몇 년 동안 계속 친구의 부모님을 찾아뵈어야겠다고 요구했다. 부모님의 노화를 전해들을 때마다 친구의 절박함이 느껴졌다. 사랑하는 아버지의 몸의 변화와 상실을 친구는 하나하나 새기는지 아픈 사람 같았다.

글쓰기 강좌를 하게 된 곳이 수원이어서 서울에서 가는 차편이 어떻게 되는지 답사를 할겸 서울역에서 광역버스를 타고 달리는 동안 일이 일찍 끝나면 친구의 부모님께 여름 과일을 들고 찾아뵈리라. 건강하실 때 찾아뵈어야지 아픈 다음에 찾아뵈면 무슨 의미인가. 차창 밖으로 지나치는 풍경이 흐려졌다. 이때가 가장 힘들다. 노부부가 일상생활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 알송달송 할 때가 자식도, 본인들도 힘이 든다. 지금은 정신이 맑아도 저녁이면 온통 안개 속 세상을 사는 노부부의 집은 더 이상 안심이 되고, 안전한 장소가 아니다.


친구가 불러준 주소로 택시가 내려준 곳은 초록 산이 울타리가 되어준 아파트 앞이었다.

어머니께서는 매일 오전 시장에 장을 보러다니시며 시간을 보내신다고 한다.

아버지께서는 집밖에는 거의 나가시지 않고 집에만 계시는데 아무것도 드시지 않는다고 한다. 젊은 시절에는 차로 장을 보니 힘들지 않겠지만, 나이든 부부가 살기에는 불편할 수 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서울에서부터 장을 봐올 걸 그랬다. 아파트 내 편의점에서 컵에 든 파인애플과 간단한 먹을거리를 사서 친구의 아버지께 인사를 드렸다. 친구는 아버지께 뭘 사갈지. 뭐가 좋을지 물었을 때 막걸리 한 병이라고 했었다. 비닐봉지에서 막걸리를 꺼내자 아버지께서 미소 지으신다. 나는 부엌으로 가서 두부를 전자레인지에 돌린다. 식탁에는 늘 양념간장이 있다고 친구는 말했다. 우리는 어떻게든 아버지께서 뭔가 드시도록 해야한다는 것에 동의했다. 따끈따끈하게 데운 두부 위로 양념간장으로 간을 해서 거실 테이블에 놓자 아버지께서 하얗게 웃으셨다. 낯선 웃음이었다. 아주 낯설다. 낯설기에 슬픈 미소였다.

아파트를 나서며 나는 친구에게 문자를 했다.

‘사과 간 것 반쪽, 두부 반모, 밤 두 알, 파인애플 몇 조각 드셨어.’

그리고 답장이 왔다.

‘내가 힘들어보니 더 더 많이 힘들었을 네 생각에 곁에서 친구로서 위로가되지 못했을 과거가 미안해지더구나. 너는  참으로 씩씩하다. 착한 나의 친구다’


두 번째 와인을 마시며 친구의 문자를 다시 한번 읽어본다. 서로에게 힘이 되고 기대면서 세월의 굽이굽이를 이렇게 건너가는 것이다. 헤밍웨이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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