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학을 앞두고 잠자리에 든 정명이가 ‘학교 가기 싫어요’ 하길래 그럼 ‘어떻게 하고 싶은데?’ 하고 물었다.
“회사에 다니고 싶어요. 전 어떤 회사를 다닐까요?”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정명이가 이렇게 말했다.
“전 고모 회사에 다닐래요. 손 아픈 할머니댁에 같이 가서 일할래요.”
“그래?” 나는 추임새만 넣고 아이는 상상의 나래를 펴기 시작한다.
“저는 설거지를 할래요. 고모는 무슨 일 할래요?”
“응, 난 손 아픈 할머니 목욕 씻겨드려야지. 너도 봤잖아. 매일 목욕 씻겨드려야지.”
“우하하, 그럼 우리 일 같이 끝나겠네요?”
“그래 퇴근 같이 할 때 맛있는 것도 사먹자.”
잠시 기분 좋은 소리를 내더니 이내 잠들어버렸다.
정명이는 좋겠다. 난 나이 오십에야 돌봄이라는 좋은 직업을 만났는데 아홉 살 인생에 돌봄이라는 직업을 알아보다니.
코로나 19로 작년 1년은 나에게 인생 최고의 위기였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정명이는 ADHD 치료를 받기 시작했고, 코로나로 문을 닫은 학교는 감기 기운만 있어도 돌봄교실에 나오지 못하게 했다. 아이를 돌보기 시작하고 돌봄 노동시간을 줄일 수밖에 없었던 나는 하루 3시간의 일을 하기 위해 문닫은 학교의 돌봄교실이 간절히 필요했지만, 그것마저도 여의치 않은 날들이 많았다. 할 수 없이 나의 뮤즈에게 양해를 구하고 아이와 동행하며 요양보호사로서 재가방문을 이어갔다. 아이는 밥상에서 숙제를 하고, 가방에 넣어간 그림책을 읽고, 티브이 만화를 보며 내가 뮤즈를 돌보는 일을 보고 있었다.
어느 날이었다. 꿈에 대해서 이야기하던 날 정명이는 나에게 씩씩하게 말했다.
“저는 요양보호사가 될 거예요.”
그날부터였던가 아이는 잠자리에서 꼭 손 아픈 할머니의 안부를 물었다.
“오늘은 무엇을 만들어주셨어요?” “내일은 병원에 가시나요?”“손 아픈 할머니의 할아버지 손은 나았어요?” 등등 아주 구체적으로 그들 노인부부의 안부를 잊지 않고 챙겼다.
또 어느 날 저녁에는 이런 대화도 나누었다.
“그런데 정명아 고모는 요양보호사이기도 하고 글도 쓰는데 작가가 되는 건 어때?”
부지런히 밥을 먹던 정명이가 말한다.
“당연하지요.”
나는 더 이상 아이에게 꿈에 대해 묻지 않기로 했다. 아이가 자라면서 마음가는대로 이것저것 공상 속 체험학습을 하도록 충분한 영양식만 공급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