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우울에 대하여..

by 이은주

아침에도 같은 자리에 앉아계셨는데 돌봄 일을 끝내고 점심에 갔더니 아직도 그 자리 그대로다.

"그 약이 센지 아무것도 할 수가 없구나."

걸레도 대야에 그대로 있고, 아침에 드신 그릇도 그대로 있고, 끓여놓은 보리차도 물병에 담지 않아 그대로다. 3주 전에 내 허리에 맞은 근육주사는 한달이 되기도 전에 효과가 사라졌다.


거짓말하지마 엄마. 엄마는 쭈욱 내가 고등학교 때부터 그랬어. 아프다며 하루종일 그 자리에 누워있는 날이 많아서 나는 정말 엄마 없이 황야의 이리가 된 기분이었어. 왜 내 딸이 되려고해. 왜 내 딸인 것처럼 자신의 인생 숙제를 나에게 맡기고 뒤에 숨어만 있는거야.. 문밖에 둔 쓰레기봉투에 쓰레기를 채우며 중얼거린다.

미워하면서, 엄마의 우울을 혐오하면서 마치 가족이라는 군대에 입대한 것처럼 탈영도 못하고 인생 끝나는 날까지 가족을 위해 쓰이다 죽어질 몸이다.


이제 이동해야 할 시간.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와 언어수업을 받으러 이동하는 동안 나도 양육자 상담시간에 맞추어 대기실에 가있어야 한다. 엄마는 우울증이라는 병을 인정하지 못하고 자신을 속여오면서 마침내 행동하는대로 사고하게 되었다. 사고한 대로 행동해야 그 우울의 벽을 넘을 수 있는데.. 엄마 그 병은 스스로 노력해야 하는 것도 맞지만, 내가 손을 잡고 그 벽을 넘게 해드리지 못해 미안해.

나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어. 그냥 지켜보면 나을 줄 알았고 병원에 가자고 하면 화부터내니까 내가 대신 그 약을 십여 년간 먹었다는 걸 알아줘. 내가 그 약을 먹고 엄마의 점심을 차릴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는 것만 기억해줘.


노인은 설거지를 하고 쓰레기를 버리고 보리차를 담아 냉장고에 넣고 문턱을 넘으려는 나에게 미안한 듯 진심이 담긴 인사를 한다.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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