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도쿄 3부작

동경인연

by 이은주

<동경 인연>의 머리말을 쓰려고 이런저런 상념에 젖다가 눈물이 흘러서 눈물을 닦고 있을 때 애완견인 뽀삐가 두발로 서서 안아달라고 보챈다. 이 녀석은 내가 아프거나 눈물을 흘리려하면 늘 이렇게 갑자기 달려와서 안아달라고 보채는 것이다. 시미즈 선생님을 마지막으로 뵈었을 때가 언제였나. 안의 결혼식에 초대되어 갔을 때 결혼식 전날 마리 아줌마와 함께 선생님의 동료 선생님들과 제자들이 모인 술자리에서의 만남이 마지막이었다. 시미즈선생님과 마리 아줌마는 처음 만났으나 서로 잘 아는 분들처럼 정답게 대화를 나누셨다.

“뭐라구요? 내일이 당신 딸의 결혼식인데 지금 이곳에 와있는거요. 그것 참 대단하군요.”


마리 아줌마는 그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그러세요. 결혼식은 결혼식 업체에서 알아서 준비해주는데 라는 듯 술잔을 홀짝였다. 그게 시미즈 선생님과는 마지막 만남이 되어버렸다.

학습지 교사를 하며 미야자와 겐지의 『첼로 켜는 고슈』처럼 매일 저녁 밤늦도록 시미즈 선생님의 도스토예프스키 평론집 번역을 하면서 삶의 고단함을 견뎠다. 그런 날이면 낡은 한옥집을 개조해서 세를 얻어 살고 있는 나의 기차방 현관문을 지나 선생님이 내 등뒤에서 지켜보는 것만 같았다. 가난한 대학생 라스콜리니코프가 굶으면서 공부를 계속할 수 없는 상황이나 가족을 위해 몸을 팔아야 하는 소냐나 그런 딸의 슬픔을 잊기 위해 술을 퍼마시는 마르멜라도프는 나의 가족이기도 했다. 연민하고 아파하면서 써내려간 시미즈선생님의 평론이 열린책들에서 나오고 선생님과 재회할 기회가 있었다. 바로 한국 출판을 기념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기로 한 전날 도쿄에서는 큰 지진이 있었다. 그래서 선생님과의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으로 귀국하고나서 시미즈 선생님께서는 제자들과 동료 교수들과 자주 서울에 오셨었다. 엄마는 IMF로 조카에게 사줄 분유값조차 남기지 않고 빚정리를 하셨다. 나는 엄마가 주신 금목걸이를 팔아 이력서에 쓸 사진을 찍었다. 최악의 나날일 때 시미즈 선생님은 오셔서 밥도 사시고 술도 사주셨다. 그리고 너는 할 수 있다고 열변을 토하셨다. 마치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서 프랭키가 링 위에 선 메기에게 말했던 것처럼.

‘항상 자신을 보호하라! 모쿠슈라 나의 사랑, 나의 혈육’이라고 말이다.

공항으로 가는 리무진 버스의 줄에서 벗어난 선생님은 나를 한번 꼭 안아주셨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은 알 것 같다. 링 위에는 너 혼자 서있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도 함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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