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도쿄 3부작

동경인연 머리말

by 이은주

출판사에서 오케이가 떨어질지 모르지만 일단 머리말 완성.

인천공항 31번 게이트는 나의 번역작업실이었다. 면세점에서 가방을 팔다가 쉬는 시간이면 여행객 사이에 앉아서 손바닥만한 포스트잇에 초벌번역을 해두었다가 퇴근 후 컴퓨터로 입력해가는 방식이었다. 후지타니 오사무의 <배를 타라> 소설 속 주인공이 첼로연주자였기에 당연히 음악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그 무렵 막내조카를 피아노학원에 데리고 다니며 아이가 레슨을 받는 동안 복지관 목욕봉사를 하고 있었다. 쉬는 날도 쉴 수가 없었고, 자신을 쉬게 내버려둘 수 없었다. 갑자기 무기력해지면서 삶 전체가 풀썩 주저앉을 것 같은 위기감이 매일 밤 엄습해 왔다. 매일 밤 가위에 눌렸고 한번 잠에서 깨어나면 잠들 수 없었다. 불멸의 밤들을 밀어내기 위해 일하고 또 일했다.


스물세 살 바다를 건너며 3단 이민가방을 끌고 떠났던 나는 젊은이였다. 막연히 내 이름으로 된 책을 쓰고 싶었던 젊은이였다. 설날 이국에서 읽던 <지하생활자의 수기> 속 화자가 바로 나였다. 그 후 쉰의 바다를 건넌 내가 <동경인연>을 끝으로 이은주 3부작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돌이켜보면 <나신요>와 <오래울>과 <동경인연>은 돌봄의 변주곡과 같다.

자신을 돌보고, 가족을 돌보고, 나아가서는 타인을 돌보는 과정에 문학의 힘이 컸다.


<동경인연>을 잠시 소개하자면 문학의 힘을 알려주신 시미즈교수님 이야기로 1부가 시작된다. 2부에서는 지금은 하늘나라에 가고 없는 헌책방아저씨와의 우정을 그렸다. 3부에서는 진정한 학교를 꿈꾸고 실천한 프리스쿨 이노우에선생님과의 만남을 그렸다. 4부에서는 학교 밖에서 만난 여러 나라 젊은이들과의 에피소드가 소개되어 있다. 5부에서는 이 책을 쓸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만남, 나의 우체국 아줌마 이야기가 나온다.

나는 가끔 달이 되어 내가 살던 오치아이에 다녀온다. 나의 사랑하는 친구들이 있는 곳. 그리고 잊었던 꿈을 떠올린다. 안데르센이 되고 싶었던 못난 오리새끼가 백조가 되는 꿈. 그림책 속에서 보았던 백조가 커다란 날갯짓을 하며 호수를 차고 날아오를 때의 아름다움을 글로 쓰고 싶었다.

내가 쓴 <동경인연>을 읽은 사람들이 신비한 기분에 쌓여 지도를 펼쳐놓고 어디에 그런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 어떻게 하면 그렇게 살 수 있는지 궁금해하고 궁리하는 시간을 갖는다면 기쁘겠다. 이 글을 읽는 동안 코로나19도 다른 질병처럼 과거 속으로 사라져주길 바란다.


photo by lambba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