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드코로나와 책과 낙엽

by 이은주

저녁시간에 혼자 놀던 정명이가 침대에 걸터앉아서 이렇게 중얼거렸다.

“고모는 나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학교에도 와주고..”

평소에 쓰지 않던 말을 하는 정명이가 다시 보여서 물었다(내 입은 벌써 귀에 걸렸다).

“뭐라구? 고모가 너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게 보여?”

“예.”

오전 10시 30분에서 11시 10분까지 2학년 5반 독후활동을 다녀온 날이었다.

책방짙은:에서 열린 ‘제님의 북큐레이션 전시’에서 알게 된 <아모스 할아버지가 아픈 날>로 수업을 시작했다.

담임선생님의 소개로 수업이 시작되었다. 연극의 막이 오른 것이다. 쉬는 시간에 교실 앞 빈터에서 동그랗게 모여앉아 놀던 여자아이들이 조용히 자리에 앉았고, 교실 뒤에서 신나게 몸으로 놀던 남자아이들도 자리에 앉았다. 정명이는 쉬는 시간 10분 동안 교실 앞뒤로 이동하며 친구들의 놀이를 구경하는 쪽이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아모스 할아버지가 아픈 날>을 읽고 돌봄에 대해서 생각해 볼 거예요. 그 전에 제 소개를 하지요. 저는 일본어 번역가이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좋아서 요양보호사이기도 해요. 그리고 요양보호사를 하며 쓴 글이 책이 되어 나왔어요.

와아~(아이들의 와~ 한 번에 기운을 얻고)


다음은 전날 정명이와 준비한 독서통장 키트 중 한 개를 꺼내서 보여준다.

“책을 다 읽고 난 후엔 여기 있는 독서통장에 오늘 읽은 책을 적을 거예요. 이 안에는 몽당연필도 들어있어요. 여러분은 몽당연필을 어느 정도 크기라고 생각하세요?”

준비해 간 몽당연필로 만든 나무액자를 보여주자 또 다시 와아~ 두 번에 씩씩해진다.


“저는 7cm 정도를 몽당연필이라고 생각해요. 여러분들도 연필을 여기까지 쓰고 모아서 나중에 이런 작품을 만들어 보세요. 목공용 풀로요.”

“다음에는 제가 책을 읽은 다음 기록하는 독서기록장을 보여줄게요.”

1993년부터 쓴 낡은 독서기록장을 보여주자 세 번째 와아~를 들을 수 있었다.

아이들이 콩나물처럼 삐죽삐죽 자리에서 일어나 본다.

“저는 책 1000권을 읽은 날 치킨을 사먹기로 약속을 했어요. 제가 치킨을 먹었을까요?”

못 먹었어요. 먹었어요. 대답이 엇갈리는 가운데 정명이 친구 제이가 흥분했는지 자신의 독서기록장을 펼쳐보여준다.

“여기요 저는 천 권, 만 권도 읽었어요.” 제이의 기록장에는 2학년 동안 벌써 200권이 넘는 책 목록이 적혀있었다. 정말 천 권은 읽었지 싶다. 그런데 자신과 같이 천 권을 읽은 사람이 눈앞에 나타난 것이 몹시 반가운 모양이다. 40분 내내 제이의 수업 참가 열정은 100퍼센트였다.

책읽기를 마치고 준비해 간 돌봄인형 카드와 돌봄카드 만들기를 진행하기 전에 나는 특기인 종이 오리기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칠판에 붙여서 보여주었다. 빨강 머리앤.

2학년 5반 여자아이들 중 서넛이 나와 인형을 자세히 보았다. 다음엔 고양이 괴물을 오리면서 화가 마티스 이야기를 해주었다.

“화가 중에 마티스는 종이오리기로 작품을 만들었어요. 인도네시아는 그림자인형극이 있어요. 동아시아에도 종이오리기가 있는데 중국에서는 종이오리기 공예가 있어요. 한국에서는 종교적으로 쓰지요. 일본에서는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요.”

꼬리가 두 개 달린 고양이가 완성되자 이번에는 2학년 5반 남자아이 서넛이 나와 연구를 하기 시작하고 본을 뜨고 오리고 확인을 받으러 나왔다. 실패한 친구들은 색종이를 한 장씩 더 원했고 나는 아주 소중한 종이라는 듯 딱 한 장씩만 더 나누어주었다.

“여러분은 이제 돌봄인형을 만들거예요. 집에 기르고 있는 애완동물이 있나요? 그럼 오늘 뭘 해줄지 써주세요. 금붕어에게 먹이를 줄 건지, 강아지에게 산책을 시켜줄 건지, 아니면 자라에게 물을 갈아줄 건지.”

“저는 없어요.”

“그럼 기르고 싶은 동물을 상상해서 쓰세요.”

“자, 완성했나요? 그럼 발표해보세요.”

서로서로 발표하느라 정신이 없는 가운데 귀에 쏙 들어오는 단어가 있었다.

“저는 난초에 물을 줄 거예요.”

“오, 너는 식물도 돌보는구나.”

“예.”

“고양이요.”

“고양이를 기르니?”

“아니요. 엄마가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줘요.”

돌봄인형 카드를 만들고, 돌봄카드를 만드는 동안 우리의 독서활동 40분은 마법처럼 지나가 있었다.


저녁에 정명이에게 물었다.

“친구들이 몽당연필 선물한 거 좋아했니?”

“예, 엄청.”

“소담이는 겨울방학에 독서통장 선물 받으러 같이 가자고 했어요.”

“선생님이 오늘 독서활동 잘 했다고 칭찬스티커 3개나 주셨어요.”

오늘따라 정명이의 입이 떨어져서 학교생활 일부를 전해들을 수 있었다.

“오늘은 낙엽을 가지고 꾸미기를 했어요.”

“그래? 낙엽은 어디서 났어?”

“선생님이랑 운동장으로 나갔어요.”

위드코로나를 실감하며 안도하는 나. 이제 학교가 예전의 모습을 되찾았다.

쉬는 시간에도 복도에서 뛰는 아이 하나 없는 쓸쓸한 인상의 초등학교에서 붉게 물든 낙엽을 찾아 운동장으로 뛰어나가는 학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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