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말

by 이은주

엄마가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는 그냥 미장원에 간지 오래되어 단발이 되어가고 있다. 엄마는 내가 부엌에 설 때 쓰는 앞머리 정리용 핀을, 반짝이는 큐빅이 촘촘히 박힌 튜울립핀을 보고 예쁘다고 한 적이 있었다(선물받은 핀을 나는 사실 소박한 핀으로 바꾸고 싶다).

과연 내가 고른 오늘의 머리핀을 좋아하실까. 그러고보니 '엄마의 말'을 기록해야겠다.

상처받은 말이지만 지금은 극복한 말들.


네가 사준 옷은 다 마음에 안 들어.

난 준 것도 빼앗아서 손녀딸에게 주고 싶어.

네가 아들이었으면 또 낳지 않았을거야.

엄마의 말이 신기할 때가 있다. 어떻게 저렇게 말할 수 있을까? 엄마가 바라보는 세상은 흑백일까? 아니면 볼록거울, 오목거울? 이해가 부족한 걸거야. 논리력은 있는데 감수성은 고장난 게 아닐까. 근데 연애드라마를 좋아하시는걸 보면 어떤 환타지가 있으시네.. 등등 엄마를 탐구한다.

그리고 그런 엄마의 말에 더이상 흔들리지 않을 나는 퇴근 길 단발머리를 고정할 핀을 고르며 엄마가 빨간색을 좋아했었나? 초록은 마음에 드실까? 마음에 안 들면 바꾸어드린다고 할까? 이런저런 상념으로 망설이면서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욕망이 거세된 채 살아온 엄마의 서사에 가슴 아프다. 아들은 오랫동안 아팠다.딸은 잘나서 엄마의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나로서는 상처받지 않으려는 몸부림이다). 예전의 젊었던 엄마는, 내가 아는 엄마는 그런 엄마가 아니었다. 세월에 의해 목소리를 가질 수 없었던 엄마의 일그러진 말.

그 말을 모아야겠다. 늦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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