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명화극장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은주 May 20. 2019

지아장커의 무용-Useless, 2007

끝없이 걸린 옷걸이의 옷들. 다림질 하는 남자들, 실밥을 따는 여자들 곁에서 돌아가는 선풍기를 차례로 보여주며 영화 「무용」은 시작된다. 하얀 옷감을 자르는 재단 가위에 광저우라는 머리글자가 새겨져 있다. 어디에선가 본적이 있는 풍경이다. 1990년대 초 선배가 운영하는 자수공장에도 늘 이런 소음과 함께 기계적으로 실밥을 따던 사람들이 있었다. 점심시간 이외에는 쉬지 않고 돌아가는 기계에서 나오는 자수의 실밥을 따던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다. 

이윽고 점심시간 풍경을 카메라는 담는다. 인상적인 것은 직원식당에 쌓아 둔 식기들이 식판이 아니라는 것.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개인이 지참한 도시락 통에 음식을 주고 그 음식을 대부분 서서들 먹는 것이다. 다음은 공장 안에 있는 진찰실. 목의 통증을 호소하거나 눈이 부은 사람의 증상을 들으며 진찰하는 의사가 약을 처방하거나 간이침대에서 휴식을 취하도록 지시한다. 다음은 한밤중에 재봉틀 작업을 하는 사람들과 다량으로 생산되는 의류에 붙은 택이 클로즈업 된다. 

다음은 이 영화의 제목이기도 하고 중국 브랜드이기도 한 ‘무용’의 디자이너 마케의 인터뷰가 이어진다. 그녀는 말한다. ‘수공품은 감정을 전달한다고 생각해요. 사람 손길을 거쳐 한땀 한땀 바느질을 거친 옷은 길고 긴 시간이 누적되면서 감정이 들어가게 되지요. 이게 공장의 조립 라인과 완전히 다른 점이죠.(중략) 소비자는 입고 있는 옷을 누가 만들었는지 몰라요. 끝없이 상품이 소비되는 시장에서는 수공품을 받아들일 수 없죠. 기업정신에 어긋나니까요.’

마케는 대량 생산으로 얼마든지 싸고 좋은 옷이 만들어지는 세상에서 과연 중국적인 건 무엇이며 상품의 소비만이 아닌 옷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 속에 어떤 의미를 부여했는지, 그리고 그 한 벌의 옷이 만들어지기까지 들이는 시간과 노력으로 완성된 브랜드에 ‘쓸모없는’이라는 이름을 부여하게 된 동기를 담담하게 들려준다.‘수공품은 아주 오래 사용해요. 대물림을 하죠. 만드는 데 시간이 걸렸고, 제조자의 정성과 노력이 들어갔기 때문에 쓰다가 흠집이 나는 일이 생기더라도 쉽게 버릴 수 없게 만들어요. 아주 평범한 물건이라도 할아버지가 물건을 만들어 아버지에게 물려주고, 아버지는 또 아들에게, 아들은 자기 자식에게 그 역사를 말해주겠죠. 물건에 이런 역사가 있다면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한사람의 삶과 생명이 변천하는 과정이 내포되어 있어요. 그걸 바탕으로 함께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어요. 하지만 슈퍼에서 산 일회용 종이컵 같은 것은 물 한 번 따라 마시고 버리는데 사람들이 그 컵의 역사를 말하나요? 없어요. 수명이 짧으니까요.’

마케의 인터뷰 후 백화점 라운지 같은 곳으로 장면은 이동한다. 그곳엔 젊은 여성들이 앉아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카메라는 그녀들의 옷, 가방, 구두를 클로즈업한다. 루이비똥 가방과 루이비똥 벨트가 유난히 눈에 띈다. 영화는 그녀들의 대화를 엿듣는 것처럼 들려준다. “프라다, 디자인엔 정말 진정한 철학이 담겨 있어.” “영국 브랜드 폴 스미스도 괜찮아. 면티 같은 건 입으면 아주 편해.” “라코스테 색이 제일 잘 나가.”“중국에서 만드는 외국 브랜드는 재료도 안 좋고 질도 별로야.” 자신이 선호하는 브랜드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가치를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들. 마치 명품을 입으면 자신이 명품이 되는 것처럼 느끼고 있는 건 아닐까. 이들의 대화 속에서 감독은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일까. 

다시 마케의 인터뷰가 계속된다. ‘당시에는 중국을 대표할 디자이너가 없었어요. 저는 옷은 천박해야 하는가라는 글을 쓴 적 있어요. 옷에 더욱 본질적인 의미를 담아 전달’하지 못한다면 그 디자인은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여 자체 브랜드 무용을 만들었다고 한다. 파리 패션쇼를 준비하는 마케의 작업실은 도시가 아닌 나무가 무성한 곳이다. 그녀의 작업실에는 ‘無用’이라는 라벨이 달린 옷이 전시되어 있다. 그녀는 말한다. ‘역사가 있는 게 매력도 있어요. 시간을 겪었잖아요. 이건 몇 년 전부터 생각해왔던 일이에요. 옷을 땅 속에 묻어 두어 시간이 형태를 변하게 만드는 일이죠. 전 오랫동안 구상해왔어요. 자연과 함께 창조하는 일을요. 창조 과정에서 내가 제어하지 못한 부분을 자연에게 맡기는 거예요. 저는 작품의 기초를 다지고 방법을 구상만 하고 그 나머지는 자연이 완성하게 하는 거죠. 땅 속에 묻힌 옷을 꺼낼 때에 그 옷 자체에 자연스럽게 매장한 장소와 시간. 그 옷에 관한 모든 느낌이 기록되어 있을 거예요. 전 물건도 기억할 수 있다고 믿어요. ’ 마케의 옷에 대한 관심이 단지 몸을 가리기 위한 것도 아니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서 입는 것도 아닌, 그 옷이 가지고 있는 역사와 그 옷을 만든 사람의 애정이 담긴 손길을 전달하고자 하는 것임을 알 수 있는 내용이다. 자신이 만든 옷을 땅 속에 묻어둠으로써 자연의 손길에 옷의 완성을 맡기는 작업. 어떻게 보면 그녀의 말처럼 옷은 기억한다. 곧 마케의 옷을 입는다는 것은 기억을 입는다는 것이라고 읽혀지기도 한다. 이것은 어쩌면 변화무쌍한 사회에서 오래되고 낡은 것은 잊힌다는 논리에 맞서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는 무언의 투쟁과도 같다. 사라져가는 전통, 새롭고 기계화된 것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소비되고 있는 옷에 대한 진지한 자세.

다음 장면은 산샤의 광업지역의 의류 제작공방이 죽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대부분 돈이 되는 광부로 직업 전환을 한 양장점 주인, 혹은 바지 길이를 줄이는 옷수선집으로 생계를 잇는 사람들의 모습은 영화 첫 장면에서 기계화된 의류공장과는 대조적이다. 이 또한 언젠가는 사라져갈 처지이기에 어딘지 애잔함이 느껴진다. 카메라는 비닐봉지 하나를 들고 걸어가는 사람을 따라간다. 그가 도착한 곳은 수선집. 그는 바지를 고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주인에게 값을 치른다. 2위안이라는 주인에게 덜컥 3위안 줄까 묻는다. 자신의 바지고치는 데 아무래도 3위안은 줘야 된다고 생각하는 모습이다. 그런 그에게 수선집 주인은 단호하게 ‘필요 없어’라고 한다. 마치 턱없이 비싼 프라다나 아르마니와 같은 명품 브랜드를 빗대고 있는 듯하다. 산샤 지역 대분분의 사람들이 광부로 일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기에 그들의 하루를 따라가는 카메라에는 그들이 일을 끝마치고 온통 숯검정이 된 몸을 씻는 장면이 잡힌다. 고단한 하루 일과를 끝내고 부지런히 몸을 닦는 그들은 실올 하나 걸치고 있지 않다. 자신의 신분을 알릴 옷도 걸치고 있지 않다. 그들이 어디에서 왔고 무슨 일을 했으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모르지만, 살아남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변화를 겪어야 할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추측이 가능하다. 예전에는 옷을 만들었지만 대량생산으로 인해 값이 싼 옷을 얼마든지 살 수 있는 요즘 옷값을 웃도는 인건비를 받지 못하기에 광부가 되었듯이 말이다.

한편 옷을 땅 속에 묻어 두어 시간이 옷의 형태를 변하게 만드는 작업으로 자신의 작품을 구상한 마케의 옷에 대한 철학은 예전에 옷을 만들었던 광부의 존재를 세상에 재인식 하게 한다. 옷에도 기억이 있다고. 시간을 통해 그 옷을 만든 사람과 옷을 입는 사람이 공감할 역사가 있다고. 옷은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함께 창조함으로써 한 번 쓰고 버리는 종이컵과 같은 것이 아니라는 마케의 말은 대단히 울림이 강하다.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평범한 사람들을 조명하기로 유명한 지아장커 감독의 「무용」은 영화 「동, Dong」과 함께 그의 예술가 삼부작에 속한다. 그의 「무용」에 대한 인터뷰를 찾아서 읽어 보면 그가 왜 중국을 대표하는 6세대 감독인지 깨달을 수 있다. 그는 중국의 빠른 개발에 대한 이의이자 하나의 반란으로 마케의 ‘無用’을 보고 있다. ‘기억의 소멸, 천연자원의 고갈과 이 모든 일이 너무나 빠르게 일어나는 것에 대한 반발‘로서 마케의 ‘無用’이 존재한다. 나는 영화 「무용」을 보는 동안 건축가 승효상 선생님께서 쓰신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에 나오는 한 문장이 떠올랐다. ‘건축 속에 영혼이 거주하게 되면 그 건축은 장소를 떠나고 시대를 떠나서 우리에게 감동으로 다가오게 된다’그렇다. 마케의 옷도 그렇다. 그녀의 옷은 장소를 떠나고 시대를 떠나서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왜냐하면 그녀가 만든 옷에는 자연의 심연과 그녀의 손길이 만나 영혼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지아장커는 마케의 옷과 광부가 된 예전의 양장점 주인과 기계화된 의류생산공장을 보여줌으로써 평상시에는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입던 우리의 옷에 대한 생각에 몇 가지 질문을 던진다. 감독은 ‘브랜드에 대한 열광과 역사적 기억의 끊임없는 삭제 사이에 어떤 어두운 관계’가 있음을 감지한다고 하는데 그 어두운 관계란 우리가 입은 옷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혹사당한 노동자는 없었는가, 환경오염은 없었는가, 기업화 논리에 이웃의 작은 상점이 문을 닫지는 않았을까? 라는 점이다. 어쩌면 내가 입은 이 옷은 아픈 옷이며, 떳떳하지 못한 옷이며, 건강하지 못한 옷은 아닐까? 그렇다면 앞으로 내가 입어야 할 옷은 자연친화적이어야 하며 여러 벌 대신 한 벌이라도 떳떳한 노동 임금으로 치룬 옷이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영화 「무용」은 완곡히 말하고 있는 것이다(방통대 중국공연예술 과제물).

매거진의 이전글 피와 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