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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주 May 20. 2019

카페 뤼미에르(허우샤오시엔 감독)

                                                                        

-오즈 탄생 100주년 기념 작품-
A.
땡땡땡. 전차 지나가는 소리. 암전.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만 들리는 방에서 창밖에 걸린 빨래 줄에 세탁물을 털어 너는 소리 들린다. 이윽고 전화벨 소리.
전화 도중에 찾아온 집주인에게 대만에 다녀온 기념이라며 파인애플 케이크를 건네는 요코.
다시 전화 통화를 하는 요코는 지난밤 꿈이야기를 한다.
“이상한 꿈을 꾸었어. 아기가 바뀌어서 슬퍼하는 꿈. 얼음으로 되어 있는 아기 얼굴이 녹는 거야. 게다가 아기의 얼굴은 온통 주름투성이라서 마치 노인 같았어.”

B.
헌책방 안.
일본 배우 중에서 한국인에게 유일하게 인기 있는 배우로 손꼽히는 아사노 타다노부가 헌책방에서 일하는 안도 하지메 역으로 나온다.
회중시계. 11시 45분이기도 하고 12시 15분 전이기도 한 회중시계를 안도의 생일선물로 건네는 요코. 이들은 영화 내내 서로의 내면을 이해하고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며 서로의 관심이나 일에 관해 대화를 하는 친구로 묘사된다.
안도의 취미는 전철의 소음을 기록하는 것. 
요코는 대만에 다녀 온 기념으로 116주년 철도기념 회중시계를 그에게 사온다.
프리랜서 작가인 요코는 일본에서 활동했던 대만 음악가 장웬예에 대한 자료들을 수집하고 있다. 생일선물을 받은 안도는 그녀가 주문해 두었던 책과 음악 CD를 건넨다.  
13살에 일본에 와서 우에노 음악학교에서 성악, 작곡을 독학한 전기공 장원예가 자주 다녔던 재즈 다방 ‘다트’에 가보고 싶다는 요코의 이야기를 듣던 하지메는 꿈에 대한 화제를 꺼낸다. 요코의 꿈은 고블린이라는 유럽 요정이야기와 비슷하다고. 이런 두 사람의 대화가 계속되는 동안 헌책방에서 기르고 있는 흰 개의 표정이 사랑스럽다. 고개를 갸우뚱 하다 요코의 냄새를 맡으러 다가가기도 하고 뒤로 물러섰다가 다시 다가가기도 하고 두 사람의 대화를 방해하지 않으려는 듯 앉아서 CD에서 흘러나오는 장웬예의 음악에 귀 기울이듯 귀를 쫑긋대는 모습이 요코와 하지메의 대화를 더욱 친밀하게 느껴지게 한다.

C.
흔들리는 전차 안에서 노트에 메모를 하는 요코. 
영화가 시작된 지 10여 분이 지나도록 이렇다 할 스토리는 전개되지 않고 소설처럼 섬세한 묘사만 계속되자 나는 머릿속에서 요코와 같이 메모를 한다.
‘아이 엄마가 사준 잠바는 작아서 못 입게 되었어. 2년 전 아이를 두고 집을 나가기 전에 사주고 갔었지. 이제 새 옷을 사줘야할까 봐.’
요시이 역이 클로즈업되고 요코를 마중 나온 아빠가 반갑게 딸을 맞는다.
집안. 오즈식 다다미쇼트를 볼 수 있다. 
영화 형식에 대해선 자세히 알지 못하나 오즈하면 다다미쇼트(그의 카메라는 사람이 앉아 있을 때의 눈높이인 120㎝에 고정돼 있다)라는 식의 귀동냥 때문인지 등장인물과 카메라의 동일한 위치를 보자 금방 눈에 들어온다.
TV스포츠 중계를 틀어놓고 신문을 보는 아버지, 저녁 준비를 하고 있는 엄마.
고양이 뮤에게 말을 걸거나 엄마에게 감자조림 있는가 묻는 요코.
잠시 후, 방에서 나온 아버지는 이렇게 말한다.
“역시 집이 좋은가보군. 잠들었어.”
밤중에 혼자 깨어나 부엌에서 냄비 뚜껑을 열어보는 요코. 잠에서 깨어난 엄마에게 고다츠에서 식사를 하던 요코는 아이를 임신했고, 결혼하지 않고 혼자서 키우겠다고 한다.

D.
할아버지가 주인인 찻집.
나비넥타이에 흰와이셔츠를 입은 주인은 찻집으로 걸려온 전화를 요코에게 바꿔준다.
하지메의 헌책방.
나비넥타이의 남자 종업원이 헌책방으로 커피배달을 온다. 하지메가 요코의 얼굴을 보자 감사의 표시야 한다.
요코의 꿈이야기와 너무 닮은 고블린이라는 아기 도둑이 나오는 북유럽동화책 『OUTSIDE OVER THERE』을 구해준 하지메. 이때 요코의 임신과 요코의 꿈이야기가 모호한 퍼즐에 간신히 짝을 맞춘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요코가 4살 되던 해에 집을 나간 엄마의 부재와 함께...

E.
폭풍우치는 밤.
천천히 더 이상 느릴 수 없을 정도로 느리게 선풍기는 돌아가고,
컴컴한 방안에서 전화 통화를 하는 요코.
“엄마가 4살 때 집을 나갔어. 오래간만에 나아준 엄마를 기억했어. 그 말을 하고 싶어서 전화했어.”

F.
토마루 서점.
60~70년 전에 자주 왔던 음악가에 대해서 알고 싶다는 요코에게 고개를 가로젓는 책방 주인. 모르겠다는 주인에게 아버지 때나 할아버지 때 혹시 그런 음악가가 자주 왔었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는가 묻는다. (이 영화는 이상하다. 노인이 자주 등장한다. 주인공은 아니지만 나비넥타이를 한 노인, 책방 노인, 찻집 노인 등등. 게다가 헌옷이나 철지난 옷, 허름한 차림이 아니라 깨끗하게 다린 와이셔츠를 입거나 깨끗한 옷을 차려입은 노인이 등장한다.)

G.
몸 상태가 좋지 않은 요코 대낮임에도 누워있다. 그런 요코를 찾아 온 하지메.
하지메는 요코가 먹고 싶어하던 감자조림(니쿠자가)을 만들어 주고 그녀가 음식을 먹는 동안 노트북에 그림을 그린다.
그의 그림을 본 요코가 전철로 둘러싸인 태아의 바탕색이 어둡다고 하자 피가 진해서 그렇다고 한다.

H.
옛긴자 2번지.
옛날 지도를 구해 온 하지메와 함께 음악가가 자주 갔던 찻집 ‘다트’를 찾아다닌다.
주인공의 사소한 일상을 묘사하던 영화는 전차 지나가는 소리로 시작했듯이 상하좌우로 엇갈리며 달리는 전차를 화면 전체에 담으며 엔딩 자막과 함께 끝이 난다. 













2005/11/18  작성



 





<카페 뤼미에르>에는 밥 먹는 장면, 지하철이나 열차를 타는 장면이 대부분이다. 아니면, 어딘가를 걷고 있거나 커피나 우유를 마시거 있거나. 이러한 장면들은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에서 흔한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허우 샤오시엔 영화에서도 쉽게 만나는 것들이었다. 사람의 감성과 사람살이를 보여주는 감독들은 시공을 초월해 토쿄의 거리에서 자연스럽게 만난다. 영화라는 빛과 사물을 담는 예술을 통해서. 마치 영화 속의 일상적인 인물들처럼 말이다. -이상용(영화평론가)

‘까페 뤼미에르’는 그 큰 그림 속에 점점이 오즈의 자취를 살포시 감추며 나아간다. 요코의 부모가 나란히 등을 돌린 장면은 전형적인 오즈의 다다미 미장센을 떠올리게 만들고,요코가 아버지에게 드리려고 이웃에서 사케를 빌리는 장면은 이미 도쿄 이야기에서 반복되는 설정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주인공 요코의 직업이 다큐멘터리 작가라는 점,그리고 그녀가 하필이면 실재하는 작곡가인 장웬예를 찾아다닌다는 점은 의미심장하지 않을 수 없다. 

대만에서 태어나 일본 국적을 지닌 장웬예는 바로 오즈와 허우 샤오시엔이 겹치는 지점에 있는 인물로 요코가 과거의 인물인 장웬예를 찾아 다니듯 허우 샤오시엔은 오즈의 그림자를 뒤쫒는다. 마치 오즈가 일본의 일상을 현미경적 시선으로 세밀하게 관찰하여 일본식 가옥을 전 우주의 중심에 놓았듯이 이제 21세기의 일본을 허우 샤오시엔이 그렇게 하는 것이다.-심영섭(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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