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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주 May 20. 2019

꽁치의 맛(1962)-오즈 야스지로



오즈가 남긴 마지막 작품 '꽁치의 맛'은 영어권에서는 'An Autumn Afternoon'으로 소개되었습니다.
발탈은 역시 가을날의 오후보다는 '꽁치의 맛' 쪽이 훨씬 영화와 어울리는 타이틀이라고 생각합니다. 적당한 예가 될지 모르지만, 그것은 이런 의미입니다.  
며칠 전 발탈은 주간님과 함께 우수학술 도서 신청을 위해 우체국에 갔습니다. 억수로 내리는 빗속을 달리는 차 안에서 이런 말을 들었지요. "찔레꽃 필무렵에는 가물어야 하는데..." 옛날에는 5월 가뭄이라고 할 정도로 맑고 개인날이 계속 되었지요. 사람들은 5월 가뭄을 찔레꽃 필무렵에는 가물어야 한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물론 일본에서도 그런 식의 계절 감각의 표현이 있습니다. 긴모쿠세이가 피면 태풍이 온다고...
그러므로 'An Autumn Afternoon' 같은 단편적인 제목보다는 '꽁치의 맛' 쪽이 계절을 후각화시키며 발탈의 영화적 상상력을 자극한 것입니다.

2003년은 오즈 야스지로의 탄생 100주년 기념이었습니다. 베를린, 뉴욕, 도쿄 등 전 세계에서 오즈 회고전을 열었다고 합니다. 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 미조구치 겐지(溝口健二)와 함께 일본 영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감독으로 손꼽히는 오즈 야스지로(小津安二郞)의 영화를 스크린으로 감상한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었지요.
카메라를 이동하지 않고 찍는 오즈 특유의 다다미쇼트는 tv 화면으로는 어쩐지 부족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발탈의 눈은 3초마다 화면이 바뀌는 헐리우드 영화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입니다.
꽁치의 맛은 미치코와 막내 아들 가즈오와 함께 살고 있는 히라야마의 이야기입니다. 친구가 딸의 혼담을 꺼내자 히라야마는 망설이기만 합니다. 타인의 눈에 결혼 적령기인 딸이지만, 그에게는 아직 어리게만 보이기 때문입니다.
어느날 표주박이라 불리는 중학교 은사와 술자리를 가진 후 취한 은사를 배웅한 그는 그 옛날 아름다웠던 은사의 딸이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아버지 곁에서 늙고 초췌한 모습으로 남아있는 것을 봅니다.
히라야마는 Torys bar에 분가한 큰아들을 데리고 갑니다. 죽은 아내, 엄마의 모습을 닮은 마담을 보러 간 아버지와 아들. 아들은 아무리 봐도 엄마와 닮지 않은 마담을 바라봅니다. 아버지도 마담에게서 죽은 아내의 모습을 열심히 찾고 있습니다. 히라야마는 마침내 아들에게 여동생의 혼담 이야기를 꺼냅니다. 
딸의 결혼식날. 
아버지와 남동생을 두고 자신만의 행복을 위해 결혼하는 딸의 심정과 소중하게 키운 자식을 떠나보내는 아버지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는 아침입니다. 
이윽고 딸의 결혼을 축하하는 친구들만의 술자리.
친구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술을 마십니다.
상에는 겨자빛 호리병, 초록빛 도자기 그릇, 흰색 술잔, 파란 접시가 놓여져 있습니다. 히라야마는 어쩐지 Torys bar의 마담이 보고 싶어집니다. 딸을 시집보낸 쓸쓸함이 아내의 모습이 그리워지게 했나 봅니다.
그무렵, 자식들은 집에서 아버지를 기다립니다.
비틀거리며 돌아온 아버지에게 자주 찾아뵙겠다는 말을 남기고 일어서는 큰아들 내외.  
막내 아들 가즈오는 아침에 일찍 나가야 한다며 잠자리에 듭니다. 잠자리에 들면서 "내일 밥지어 드릴께요"합니다.
아버지는 "어"하고 일어서서 조끼 단추를 풉니다.  
단추 한 개.
단추 두 개.
단추를 푸는 느린 손동작은 노인의 모습을 한없이 적막하게 느껴지게 합니다.
느릿느릿 부엌에 들어간 노인은 식탁 위의 주전자에서 물을 한 잔 따릅니다.
천천히.
천천히.
물을 들이킨 노인의 머리 위로 전등갓이 흔들려 보입니다. 분명 전등갓은 정지되어 있는데 발탈의 눈에만 흔들려 보입니다. 열어 놓은 부엌 유리문이 있고 식탁이 있고 주전자가 있는 풍경에 작고 마른 노인이 종이 한 장이 서있듯 그렇게 정지해 있습니다. 

2004/05/30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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