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에의 고백록

by 이은주

고양시 여성노동자복지센터에서 4월~6월/ 9월~11월에 걸쳐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을 위한 글쓰기 강좌를 제안했다.

격주로 2시간씩 하는 것이 효과적일지, 매주 수업하는 것이 효과적일지 모르겠다. 요양보호사선생님들의 바쁜 일정도 고려해야하니까. 예전에 써둔 쓰기에의 고백록을 다시 한번 정리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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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기에의 고백록


<쓰기의 말들> 에는 '안 쓰는 사람이 쓰는 사람이 되기 위해'라는 부제가 적혀있다.

<쓰기의 말들>의 저자 은유는 말한다. '글을 쓰고 싶다는 이들에게 일상의 구조조정을 권한다'고. 기존의 글쓰기 지도서는 책상에 앉아서 글을 쓰라고 지도한 반면 은유는 자신이 발디딘 삶에 근거해서 쓰라고 한다. 기록이 가지는 의미들을 떠올려본다.


나는 개 한 마리와 10살 손주와 산다. 그야말로 독박육아이고 24시간 대기조이다. 손주가 태어나기 8년 전 나는 직장을 다니며 방통대 중어중문과를 다녔다. 방통대 신문을 구독했을 때 은유의 칼럼과 처음 만났다. 그녀처럼 사고하고, 그녀처럼 읽고, 그녀처럼 쓰고 싶어서 그녀의 칼럼을 스크랩하기 시작했다. 은유라는 글쓰는 사람과의 만남이 나를 쓰게 했다.


실업급여를 타며 요양보호사 자격증 공부를 했던 지난날을 돌이켜본다. 자격증 취득 후 요양원에서 근무하던 기록을 모아 <나는 신들의 요양보호사>를 출판했다. 은유의 칼럼을 스크랩하며 동경했던 일이 현실이 된 것이다. <쓰기의 말들>에는 오래 기억하고 싶은 문장이 많다.


182쪽을 인용해 보면 다음과 같다. ‘글은 글을 낳았다. 그 선순환 덕에 낮에도 쓰고 밤에도 쓰고 새벽에도 쓰면서 난 ‘생의 곤궁기’를 통과했다. 글을 써서 돈을 벌고 글을 써서 사랑을 받고 글을 써서 사는 이유를 묻고 그러는 동안 삶의 에너지를 되찾았다.‘


나는 이 문장을 통해 내 삶을 되돌아본다. 남동생이 아파서 조카 둘을 돌보았다. 큰조카가 연애를 하다 아이를 낳았다. 손자의 친할머니 될 분이 ‘당신 딸 때문에 우리 애 인생을 망쳤어요.’ 하고 병원 대기실에서 말했다. 인천공항 면세점 근무를 하며 인천에서 청량리까지 아기 목욕을 씻기기 위해 왕복을 했다. 엄마는 방통대 기말고사로 바쁘다는 내게 휴학을 하는 게 좋겠다고 힘들게 말씀하셨다. 내 삶이 온통 아이들에 의해 바람에 흩어지는 나뭇잎 같다는 생각을 했다. 두세 시간 자면서 방통대를 졸업하고 손자를 돌보았다. 손자를 돌보면서 막내조카의 학원비를 버느라 청소 알바도 했다. 유리창을 닦다가 의자에서 떨어지고, 곰탕집 아르바이트 중에 김치통을 들다 허리를 삐끗했다. 허리가 아파서 더 이상 앉아서 하는 번역을 할 수 없게 되었다. 투잡, 쓰리잡을 하던 인생에서 사회적 약자가 되었다.


보통은 이런 인생 시나리오에는 결론이 정해져있다. 비극. 나는 내 인생의 주인으로서 결말을 바꾸고 싶었다. 그래서 쓰고 또 써야 했다.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글, 나에게 구원인 글, 세상을 1도 따뜻하게 하는 글, 더불어 살 세상을 만드는 글, 불안하고 정체된 삶이지만 그래도 살만하다고, 아름다울 수 있다고 긍정할 수 있는 글을 잡고 세상을 항해해야 했다. 고립되지 않고 절망하지 않고 말이다.


photo by Joan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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