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by 이은주

아무것도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더니 노인은 어찌나 서성이는지.

쌀을 씻고 밥을 짓지 않아도 밥통에 밥을 많이 해두었다는데도 노인은 부엌 앞을 떠날 줄 모르고.

부침가루, 감자가루, 카레가루, 짜장가루, 가루란 가루는 다 사놓고서 그제야 안심을 하는데.


오늘은 참으로 암것두 하지 않으셔도 된다는데 노인은 부지런히 양파를 까고 파를 다듬는데 눈물이 보일락말락.

그러게 까놓은 양파도, 다듬은 파도 냉장고에 있다는데도 노인은 우물쭈물 끓는 주전자에 보리차 티백 하나를 던져놓고서야 안심을 하는데.


저녁을 하기엔 아직 멀었지 하며 수돗물을 트는데 오른손 엄지, 검지가 굽어서 호박이 자꾸자꾸 미끄러지지 않겠소. 그만 이리 내놓으라 해도 자꾸만 냅두라고, 내 부엌이라고 하는데 물이 튀는지 내 가슴이 싸아한 게 아무래도 얼음이 박혔는가 보오.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뭐 그리 어렵다고 아까부터 자꾸 서성이는거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산 몸이 아닐까봐 그러는감. 누워만 있어도 산 몸이라고 누가 좀 가르쳐주시오. 이제 쉬셔도 된다니까 그러네.


photo by lamb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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