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에서 스페인어 회화를 가르치던 민용태 선생님이 스페인 농담 중에 이런 농담을 들려주신 적이 있는데요. 처음 만나 인사를 할 때 이렇게 묻는다고 합니다.
‘결혼하셨습니까? 아니면 행복하십니까?’ (웃음)
여러분은 행복하십니까? 안녕하세요. 행복한 사람 이은주입니다.
2.
<우리부터 치유의 인문학>에 대해 이야기하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 부끄러웠지만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건 박은미 선생님이 ‘인문학은 그 자체가 고통과 대결하는 한 방식’이라고 한 글에서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6년 동안 벽에 적혀있었던 문장을 소개합니다.
다음은 15년 동안 수첩 맨 앞에 적었던 문장입니다. 자가 처방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마침내 자가 처방도 듣지 않게 되었고 영혼은 울부짖기 시작했으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우울증 약을 삼키며 간신히 견디고 있었습니다. 이러다가 글은 써보지도 못하고 인생을 마무리하겠구나 기다리지 말고 쓰자.
3.
치유의 문학, 문학의 치유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의 세계는 현재의 저를 만드는데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등장인물을 살펴보면 살 가치가 없는 사람은 살인이 아니라는 가치관을 가진 청년 라스콜리니코프가 있습니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전당포 노파의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게 낫다고 생각하며 다락방에서 노파 살해를 계획하는데요. 고향에서는 어머니가 아들의 출세를 도울만한 남자에게 청년의 여동생 두냐를 시집보내려고 한다는 구구절절한 편지를 보냅니다. 한편 살아있어도 죽은 것과 같다는 술주정뱅이 마르멜라도프는 딸 소냐가 몸을 팔아 번 돈으로 술을 마셔버립니다. 의붓딸 소냐가 몸을 판 돈으로 자신의 자식들을 먹여야 하는 슬픔을 지닌 여성 까체리나, 살인자 라스콜리니코프를 따라 시베리아 유형지에 동행하는 소냐의 이야기는 인간에 대한 연민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4.
작년에 경기시민연대에서 요양보호사 선생님들과의 글쓰기 강좌를 통해 기록 전달자로서 한계를 느꼈는데요. 돌이켜보면 오십이 넘도록 저 또한 글쓰기가 실패의 연속이었습니다. 작년에 원고를 완성하지 못했던 선생님들도 어디에선가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을 겁니다. 한편 글쓰기 강좌를 하면서 만족할만한 결과물을 얻을 수 없었을 때 강사로서 위로가 되었던 글을 공유할까 합니다. 올해 프루스트 사후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요즘 제가 번역하는 평론집 참고자료에서 인용된 글입니다. ‘자기가 느끼는 것을 언제나 감추려고 작정하고 있는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단 한번도 생각해 본 일이 없는 터이다’
자신의 감정을 숨기기 바쁘게 살았던 분들과 만났을 때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내면의 고백들과 만나시길 바랍니다. 글쓰기로 ‘실패할 기회’를 많이 가져야 자신만의 글이 나오기에 실패할 기회를 주는 것도 한 방법이고 치유라고 생각합니다.
5.
주 1회라든가 한 달에 1번 만나서 글쓰기를 배운다는 건 어쩌면 너무 낭만적인지도 모릅니다. 대부분 글을 쓴다고 하면 매일 써야하는데 쉽지가 않습니다. 그때 도움을 받았던 책 한 권을 소개할까 합니다. 제가 사용한 독학 글쓰기 교재는 줄리아 카메론의 <아티스트 웨이>입니다. 매일 쓰고, 매일 자신과 데이트하라는 것이 이 책의 내용인데 12주 동안 과정을 진행할 수 있어서 소규모 모임에도 자주 쓰고 있습니다.
6.
또 한 가지 좋은 사례를 소개할까 합니다.
작년에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에서는 요양보호사를 위한 글쓰기 워크숍이 진행되었습니다. 올해는 보호자를 위한 글쓰기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온라인 전시와 포토에세이북을 만든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의 만족도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7.
이제 <나는 신들의 요양보호사입니다> 이야기를 잠시 할까합니다. 돌아가신 할머니를 뵙고 싶어서 요양원에 간 저는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쓰면서 자신의 삶을, 자신의 존재를 반성하는 동안 잃었다고 생각된 과거를 되찾으려는 시도와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아흔여덟이 되어서까지 성경을 읽고 스스로 걸어서 화장실에 다닌 뮤즈와 만났습니다. 가족을 돌보면서, 요양보호사로서 뮤즈와 제우스를 돌보면서 저는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서서 <우리부터 치유의 인문학>을 이야기할 때 슬쩍 요양보호사의 처우 개선이라든지 인식 개선을 해야한다고 요구하고 있으니까요.
이제 우리는 돌봄을 이야기할 때 돌보는 능력은 물론 돌봄을 받는 능력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배려가 몸에 붙은 뮤즈와 제우스. 요양원에 부모님을 부탁한 자식들의 요양원 방문 매뉴얼, 돌봄 노동자의 근골격계질환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노동환경 개선, 노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 등을 이야기하고 싶어서 이 자리에 나왔는지도 모릅니다. 물론 돌봄 종사자의 전문직으로서 요구되는 돌봄 지침도 끝없이 수정되어야겠지요. 그렇다면 이런 글을 누가 써서 알려야 할까요? 바로 돌봄 당사자입니다.
8.
<돌봄의 태도>를 보여준 영화를 소개합니다.
<욕창>을 보고 대화 나누고 싶습니다.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아무르>, 그 다음에는 아무도 돌보지 않는 고독사, 혼자 숨을 거둔 사람의 장례를 치르기도 하고 고인의 유품을 전달하기도 하는 이야기 <스틸 라이프>.